“이게 진짜 자연이 만든 예술이죠”… 장마철에만 열리는 35m 비밀 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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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비에만 드러나는 비경

마이산
마이산 / 사진=ⓒ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이근완

대부분의 여행은 맑은 날을 전제로 계획되지만, 어떤 풍경은 오직 궂은 날씨에만 자신을 허락한다. 전라북도 진안의 심장부에 솟은 기이한 산, 마이산(馬耳山)이 품은 비밀이 바로 그렇다.

말의 귀를 닮은 두 봉우리는 그 자체로 비범하지만, 진짜 비경은 1년 중 단 며칠, 시간당 50mm 이상의 폭우가 쏟아질 때 암마이봉 절벽에서만 나타나는 ‘도깨비폭포’다. 이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전국의 사진가들이 장마 예보에 귀를 기울이는 이유다.

도깨비폭포
도깨비폭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마이산의 독특한 풍경은 지질학적 구조에서 비롯된다. 두 봉우리는 거대한 하나의 바위, 즉 강바닥의 자갈들이 압력을 받아 굳어진 거대한 ‘역암(礫岩)’ 덩어리다. 표면에 벌집처럼 파인 수많은 구멍 ‘타포니(tafoni)’ 현상은 오랜 세월 비바람이 조각한 흔적으로, 국가지질공원으로서 마이산의 학술적 가치를 증명한다.

도깨비폭포는 바로 이 거대한 역암 절벽을 무대로 펼쳐지는 자연의 드라마다. 평소에는 물 한 방울 없는 맨살의 암벽이 폭우를 만나면 순식간에 거대한 물기둥을 토해내는 것이다.

마이산 도깨비폭포
마이산 도깨비폭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도깨비폭포의 신비는 자연 현상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폭포수가 쏟아지는 35m 암벽에는 ‘명예’와 ‘기다림’을 상징하는 능소화가 뿌리를 내리고 자생하고 있다. 장맛비를 기다려야만 볼 수 있는 폭포와, 임을 기다리던 궁녀의 전설을 품은 능소화의 만남은 이 풍경에 서사를 부여한다.

장마철 도깨비폭포
장마철 도깨비폭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 기묘한 조화는 마치 한 폭의 동양화처럼 비현실적인 감동을 자아낸다. 또한, 폭포 바로 옆에는 이갑룡 처사가 30여 년간 혼자 돌을 쌓아 올렸다는 80여 개의 돌탑이 서 있는 마이산 탑사가 위치해, 자연의 경이와 인간의 경이로운 집념이 한 공간에서 공명한다.

마이산 탑사 전경
마이산 탑사 전경 / 사진=ⓒ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강시몬

마이산 도깨비폭포는 ‘효율’과 ‘예측’을 중시하는 현대 여행의 관념에 질문을 던진다.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풍경을 보기 위해 궂은 날씨를 감수하고 떠나는 행위는, 결과보다 과정을 즐기는 여행의 본질을 되새기게 한다.

역암과 타포니가 빚은 지질학적 토대 위에, 능소화의 기다림과 한 인간의 평생에 걸친 염원이 깃든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비 오는 날의 불편함을 감수한 이에게만 허락되는 비밀의 정원이자, 자연과 인간이 함께 완성한 위대한 예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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