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위양지
천년 역사와 가을의 정취를 한 번에

바쁜 일상에 쉼표가 필요할 때, 우리는 종종 그림 같은 풍경을 떠올린다. 하얀 솜사탕 같은 꽃이 만발하는 봄의 명소로 알려진 곳이, 만추의 계절에 전혀 다른 매력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면 어떨까.
흔한 단풍놀이에 싫증 난 당신을 위해, 알려진 모습 너머에 숨겨진 깊은 역사와 생태적 가치까지 품고 있는 특별한 장소를 소개한다. 바로 천년의 시간을 간직한 밀양의 보석, 위양지다.
밀양 위양지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위양로 273-36에 자리한 위양지는 그 이름부터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선량한 백성을 위한다’는 뜻을 담고 있지만, 놀랍게도 이 이름은 비교적 근래에 붙여진 것이다.
신라 시대에 처음 축조되었을 당시의 이름은 ‘양양지(陽陽池)’. 인근 농경지에 물을 대기 위한 지극히 실용적인 목적의 수리 시설이었던 이곳은, 거대한 가산저수지가 들어서며 본래의 기능을 잃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상실은 위양지가 새로운 가치를 얻는 시작이 되었다. 논밭을 적시던 물은 이제 사람들의 마음을 적시는 비경으로 다시 태어났다.

둘레가 약 1km 남짓, 천천히 걸어도 15분에서 20분이면 충분한 이 아담한 저수지는 사계절 내내 다른 옷을 갈아입는다.
특히 5월이면 하얀 쌀밥처럼 피어나는 이팝나무 군락이 물안개와 어우러져 몽환적인 풍경을 자아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위양지의 진정한 매력은 한 계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울긋불긋한 가을 옷으로 갈아입은 지금, 저수지에 비친 단풍의 반영은 봄의 화사함과는 또 다른 깊고 그윽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시간의 정수 ‘완재정’을 만나다

위양지의 풍경에 화룡점정을 찍는 것은 단연 못 한가운데 자리한 고즈넉한 정자, 완재정이다. 1900년 안동 권씨 문중에서 지은 이 정자는 ‘물이 섬을 감싸고도는 모습이 완연하다’는 시경의 한 구절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이 정자를 품은 섬을 포함해 위양지에는 본래 5개의 작은 섬이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긴 세월이 흐르며 지금의 모습으로 남았다. 위양지의 풍경은 한 폭의 동양화 같아서, 많은 이들이 이곳에 걸터앉아 인생 사진을 남기곤 한다.

놀라운 것은 이곳의 생태적 가치다. 소나무, 팽나무, 느티나무 등 다양한 수목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남생이, 후투티, 원앙 같은 희귀 조류가 서식하는 생태의 보고이기도 하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위양지는 2016년 산림청이 주관한 ‘제16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공존상(우수상)을 수상하며 그 아름다움이 국가적으로 공인받았다.
지금 우리가 걸어야 할 이유

이처럼 시대를 초월한 아름다움은 여러 미디어 감독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SBS 드라마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의 애틋한 장면부터 MBC ‘금혼령’, 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에 이르기까지, 위양지는 수많은 작품의 배경이 되어 그 신비로운 분위기를 뽐냈다.
상시 개방에 입장료와 주차료 모두 무료라는 점은 이 모든 매력을 부담 없이 누릴 수 있게 해주는 큰 장점이다. 평탄한 흙길로 조성된 둘레길은 휠체어 접근도 가능해 남녀노소 누구나 편안한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이번 주말, 북적이는 유명 단풍 명소 대신 천년의 이야기가 겹겹이 쌓인 위양지를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신라의 백성들이 풍요를 기원하며 쌓아 올린 둑길을 따라 걸으며, 자연과 역사가 빚어낸 가을의 정수를 오롯이 느껴보길 바란다. 당신의 가을은 이곳에서 한층 더 깊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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