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얼음골, 천연기념물 제224호 지정

숨 막히는 폭염이 연일 이어지는 7월의 한복판. 에어컨 없이는 단 10분도 견디기 힘든 이때, 계절의 상식을 거부하는 자연의 냉장고가 있다.
기온이 높을수록 오히려 얼음이 얼고, 한겨울에는 따스한 김이 피어오르는 곳. 바로 ‘밀양의 신비’라 불리는 밀양 얼음골이다. 과학으로도 완벽히 설명하기 힘든 이 미스터리한 곳은, 더위에 지친 이들에게 가장 서늘하고도 짜릿한 여름을 선물한다.
“에어컨보다 차갑다” 계곡 입구에서부터 다른 공기

밀양 얼음골은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 산내로 1647에 자리한, 재약산 북쪽 중턱의 신비로운 곳이다.
넓은 무료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계곡으로 들어서는 순간, 주변 공기와는 확연히 다른 서늘한 냉기가 피부에 와닿는다. 2023년부터 입장료가 전면 무료로 개방되어, 이제는 누구나 부담 없이 이 자연의 경이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계곡을 따라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바위틈 곳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에 소름이 돋을 정도다. 이곳 바위틈의 여름철 평균 기온은 섭씨 0.2도에 불과하며, 계곡을 흐르는 물은 평균 4~8도를 유지한다. 아무리 더위에 강한 사람이라도 얼음장 같은 계곡물에 2분 이상 발을 담그고 있기는 힘들다.
한여름, 바위틈에서 얼음이 솟는 진짜 이유

어떻게 이런 현상이 가능한 것일까? 이 신비의 열쇠는 바로 계곡을 가득 메운 돌무더기, 즉 ‘너덜겅(Talus)’ 지대와 ‘단열 팽창’이라는 과학 원리에 있다. 약 8천만 년 전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이곳의 바위들은 오랜 세월 얼고 녹기를 반복하며 잘게 부서져 쌓였다.
이 돌무더기들은 거대한 ‘자연의 단열재’ 역할을 한다. 겨울철, 차갑고 밀도가 높은 공기는 돌무더기 틈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어 저장된다. 여름이 되어 바깥 공기가 뜨거워지면, 돌무더기 안팎의 압력 차이가 발생한다. 이때 돌무더기 속 차가운 공기가 좁은 바위틈으로 밀려 나오면서 급격하게 팽창하는데, 이 과정에서 주변의 열을 순식간에 빼앗아간다.
바로 이 ‘단열 팽창’ 효과 때문에 공기 중의 수분이 차갑게 식어 얼음으로 변하는 것이다. 반대로 겨울에는 땅속의 따뜻한 공기가 바위틈으로 나오며 더운 김을 만들어낸다.
천연기념물이 선사하는 오싹한 체험

이 경이로운 자연 현상 덕분에 밀양 얼음골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70년 4월 24일, 천연기념물 제224호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단순한 피서지를 넘어, 살아있는 지질 및 과학 학습장인 셈이다.
얼음이 어는 바위 주변으로는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어 장엄한 풍경을 자아낸다. 시원한 단풍나무 그늘 아래 마련된 벤치에 앉아 자연의 에어컨 바람을 쐬고 있노라면, 세상의 모든 시름과 더위가 사라지는 듯한 평온함을 느낄 수 있다.

밀양 얼음골을 방문했다면 인근에 위치한 ‘영남알프스 얼음골 케이블카’를 함께 이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케이블카를 타고 재약산 정상 부근에 오르면 영남알프스의 광활한 능선과 얼음골 계곡의 전경을 한눈에 담으며 또 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자연이 만들어낸 가장 차가운 선물, 밀양 얼음골. 올여름, 인공적인 바람이 아닌 태고의 신비가 깃든 서늘함 속으로 잊지 못할 피서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전체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