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송이 꽃이 소나무 숲을 덮었다”… 가을에만 볼 수 있는 무료 구절초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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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삼문동 송림공원
구절초와 함께 걷는 무장애 숲길

밀양 삼문동 송림공원
송림공원 구절초 / 사진=밀양 공식블로그 박현숙

10월의 밀양에 들어서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특히 솔 향기 가득한 숲속에 거짓말처럼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풍경을 마주한다면 말이다. 가을의 한복판에서 만나는 순백의 설경. 동화 같은 이 장면은 인공 눈이 아닌, 자연이 빚어낸 가장 순수한 가을꽃의 향연이다.

이곳에는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 밀양의 시간이 겹겹이 쌓여 만든 특별한 이야기가 숨어있다. 많은 이들이 꽃의 아름다움에 취해 스쳐 지나가는 그 깊은 이야기를 따라가 본다.

“소나무와 들국화, 그리고 낡은 건물… 완벽한 부조화의 조화”

밀양 삼문동 송림공원 구절초
송림공원 구절초 / 사진=밀양 공식블로그 박현숙

이야기의 무대는 삼문동 송림공원이다. 내비게이션에 ‘밀양문화체육회관’(경상남도 밀양시 삼문송림길 25)을 입력하고 찾아가면 바로 옆, 주차장 너머로 펼쳐지는 비현실적인 풍경에 누구나 걸음을 멈추게 된다.

수령 높은 소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기개 좋게 뻗어 있는 숲 아래로, 약 10만 본의 구절초가 끝없이 펼쳐져 지상을 온통 하얗게 뒤덮었다. 마치 거대한 자연의 갤러리처럼, 짙은 솔숲의 수직적 풍경과 새하얀 구절초의 수평적 풍경이 만나 입체적인 아름다움을 완성한다.

삼문동 송림공원 구절초
송림공원 구절초 / 사진=밀양 공식블로그 박현숙

이곳의 진짜 매력은 한 걸음 더 들어섰을 때 비로소 드러난다. 하얀 꽃밭 한가운데,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낡은 콘크리트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바로 1933년,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밀양 최초의 상수도 시설물이다.

2007년 현대화 사업으로 가동을 멈추기 전까지 70년 넘게 밀양 시내에 생명수를 공급했던 역사의 산증인이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낡은 산업유산과 청초한 야생화의 만남. 이 기묘한 동거는 이곳을 전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의 명소로 만들었다.

레트로한 건물 벽에 기댄 채 하얀 구절초를 배경으로 찍는 사진은 삼문동 송림공원에서만 얻을 수 있는 특별한 추억이다.

아홉 마디에 담긴 이야기

밀양 구절초
송림공원 구절초 / 사진=밀양 공식블로그 박현숙

계란 프라이를 닮아 앙증맞은 이 꽃의 이름은 왜 구절초일까.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인 이 꽃은 ‘아홉 구(九)’에 ‘마디 절(節)’, ‘풀 초(草)’를 쓴다. 이름의 유래에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진다.

줄기에 아홉 개의 마디가 있다 하여 붙여졌다는 설과, 음력 9월 9일(중양절)에 채취해야 약효가 가장 좋다 하여 그리 불렸다는 설이다. 예로부터 부인병 치료에 효험이 있는 귀한 약재로 쓰였으니, 그저 예쁜 들국화로만 보기엔 아쉬운 깊은 내력을 품고 있다.

솔숲 아래 흐드러지게 핀 구절초 군락은 그윽한 향기로도 방문객을 사로잡는다. 상쾌하면서도 쌉쌀한 향은 머리를 맑게 하고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이곳에서는 시각적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후각적 힐링까지 온전히 경험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열린 하얀 숲길

송림공원 구절초
송림공원 구절초 / 사진=밀양 공식블로그 박현숙

삼문동 송림공원은 밀양강 둔치와 연결되며 더 넓은 가을로 방문객을 이끈다. 특히 둑길에서 공원으로 진입하는 구간에는 유모차나 휠체어도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는 ‘무장애 데크길’이 잘 마련되어 있어,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이나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도 차별 없이 가을의 정취를 누릴 수 있다.

구절초의 청초함에 흠뻑 빠졌다면, 둑길 너머로 고개를 돌려보자. 강 건너편에는 밀양의 상징이자 대한민국 3대 누각 중 하나인 영남루가 위엄 있는 자태를 뽐낸다.

또한 밀양강변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를 조금 더 걸으면, 화려한 코스모스와 낭만적인 핑크뮬리 군락지가 또 다른 가을 풍경을 선사한다. 소나무 그늘 아래서 고즈넉한 사색을 즐긴 뒤, 강변의 탁 트인 공간에서 화려한 가을꽃과 마주하는 코스는 밀양의 가을을 완벽하게 즐기는 최고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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