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도 편하게 걷는 1km 코스래요”… 단풍이 비친 천 년 저수지길 산책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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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위양지
신라 천년 저수지가 만든 가을의 정수

밀양 위양지
밀양 위양지 / 사진=ⓒ한국관광공사 허흥무

바쁜 일상에 쉼표가 필요할 때, 우리는 종종 그림 같은 풍경을 떠올린다. 하지만 울긋불긋한 가을 산은 정상을 허락받기 위해 거친 숨을 요구하고, 유명한 단풍길은 인파와 주차 전쟁으로 지치기 일쑤다.

그런데 만약, 단 1km 남짓한 완벽한 평지 흙길을 20분 만에 걸으며 천년 역사의 저수지와 압도적인 가을 단풍의 반영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면 어떨까. 심지어 이 모든 것이 입장료와 주차료 모두 무료이며, 휠체어 접근까지 가능하다면 말이다.

봄날의 하얀 이팝나무로만 유명했던 밀양 위양지가 만추의 계절, 가장 편안하고 깊이 있는 가을 힐링 명소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1km의 평지, 모두에게 열린 가을”

밀양 위양지 가을
밀양 위양지 가을 / 사진=ⓒ한국관광공사 황기모

밀양 위양지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위양로 273-36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의 가장 큰 미덕은 ‘압도적인 편의성’이다. 저수지 둘레는 약 1km 남짓, 천천히 걸어도 15분에서 20분이면 충분히 한 바퀴를 돌 수 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 둘레길이 한국관광공사의 ‘열린관광 모두의 여행’ 정보에도 등재될 만큼 완벽한 ‘평탄한 흙길’로 조성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휠체어는 물론 유모차도 아무런 방해 없이 접근할 수 있어,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이나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에게 이보다 더 완벽한 가을 산책로는 찾기 어렵다.

이곳은 5월이면 저수지를 둘러싼 이팝나무 군락이 하얀 쌀밥처럼 꽃을 피워내 물안개와 어우러지는 몽환적인 풍경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하지만 위양지의 진정한 매력은 한 계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울긋불긋한 가을 옷으로 갈아입은 지금, 잔잔한 수면에 비친 단풍의 반영은 봄의 화사함과는 비교할 수 없는 깊고 그윽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신라의 ‘양양지’에서 백성의 ‘위양지’로”

밀양 위양지 단풍
밀양 위양지 단풍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곳의 이름 ‘위양’은 ‘선량한 백성을 위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이름은 비교적 근래에 붙여진 것이다.

이 저수지의 역사는 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 신라 시대로 향한다. 당시 이곳은 인근 농경지에 물을 대기 위한 수리 시설이었으며, 이름은 ‘양양지’였다. 지극히 실용적인 목적의 저수지는 거대한 가산저수지가 인근에 들어서며 본래의 기능을 잃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상실은 위양지가 새로운 가치를 얻는 시작점이 되었다. 논밭을 적시던 물은 이제 사람들의 마음을 적시는 비경으로 다시 태어났고, ‘양양지’는 ‘위양지’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시간의 정수, ‘완재정’을 만나다”

밀양 위양지 가을 전경
밀양 위양지 가을 전경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위양지의 풍경에 화룡점정을 찍는 것은 단연 못 한가운데 자리한 고즈넉한 정자, 완재정이다. 1900년 안동 권씨 문중에서 지은 이 정자는 그 이름부터 시적이다. 중국 고전 ‘시경’에 나오는 “물이 섬을 감싸고도는 모습이 완연하다”라는 구절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이 정자를 품은 섬을 포함해 위양지에는 본래 5개의 작은 섬이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긴 세월이 흐르며 지금의 모습으로 남았다. 저수지와 정자, 그리고 가을 단풍이 어우러진 풍경은 한 폭의 동양화 같아서, 많은 이들이 이곳 정자에 걸터앉아 인생 사진을 남기곤 한다.

이러한 아름다움은 국가적으로도 공인받았다. 소나무, 팽나무, 느티나무 등 다양한 수목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남생이, 후투티, 원앙 같은 희귀 조류가 서식하는 생태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6년 산림청 주관 ‘제16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공존상(우수상)을 수상했다.

밀양 위양지 절경
밀양 위양지 절경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시대를 초월한 신비로운 분위기 덕분에 여러 미디어 감독들의 눈길을 사로잡기도 했다. SBS 드라마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의 애틋한 장면부터 MBC ‘금혼령’, 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에 이르기까지, 위양지는 수많은 작품의 배경이 되어 그 아름다움을 뽐냈다.

이번 주말, 북적이는 단풍 명소 대신 천년의 이야기가 겹겹이 쌓인 밀양 위양지를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신라의 백성들이 풍요를 기원하며 쌓아 올린 둑길을 따라 걸으며, 자연과 역사가 빚어낸 가을의 정수를 오롯이 느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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