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보다 10배 예뻐요”… 해발 900m에서 만나는 은빛 억새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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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유네스코가 인정한 억새 명소

무등산 억새 풍경
무등산 억새 풍경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가을이 빛고을 광주에 초대장을 보내왔다. 높고 푸른 하늘 아래, 산의 능선이 은빛으로 반짝이며 오라 손짓하는 계절이다. 많은 이들이 단풍을 좇을 때, 자연의 더 깊은 서사를 아는 이들은 무등산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흔한 가을 풍경을 넘어, 지구의 역사가 빚어낸 거대한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장엄한 억새의 군무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의 진정한 가치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에만 있지 않다.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땅이 품고 있는 수천만 년의 비밀을 알게 될 때, 무등산의 가을은 전혀 다른 차원의 감동으로 다가온다.

무등산

무등산 입석대
무등산 입석대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무등산은 광주광역시 동구 의재로 29에 위치한, 광주와 전남 화순, 담양에 걸쳐있는 호남의 진산이다. 이곳이 여느 산과 다른 특별함을 갖는 이유는 바로 2018년 4월, 유네스코로부터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받은 살아있는 자연사 박물관이기 때문이다.

약 8,500만 년 전, 중생대 백악기 후기의 격렬한 화산 활동이 남긴 흔적인 주상절리대가 그 핵심이다. 천연기념물 제465호로 지정된 서석대입석대의 거대한 돌기둥들은 마치 신이 깎아 세운 듯한 압도적인 풍광을 자아낸다. 이 장구한 시간의 기념비 곁에서, 가을이면 한해살이 억새가 피어나 은빛 바다를 이루는 모습은 그 자체로 경이로운 대비를 이룬다.

이곳은 2013년 3월, 우리나라의 21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며 그 생태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수달, 삵과 같은 멸종위기종을 포함한 4,000여 종의 생명이 공존하는 보고이기도 하다.

해발 900미터 고원에서 마주한 은빛 교향곡

무등산 억새
무등산 억새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무등산 억새 산행의 서막은 증심사 지구에서 출발해 중머리재를 거치거나, 원효사 지구에서 곧장 오르는 길에서 시작된다. 어느 길을 택하든 최종 목적지는 억새 향연의 중심지, 장불재다.

해발 900미터 고지에 자리한 장불재에 서면, 눈앞에 펼쳐지는 드넓은 평원에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온다. “사각사각, 억새들이 서로 몸을 부비며 내는 소리는 평화로운 교향곡”과 같다.

탐방객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 장관을 마음에 담는다. 사진을 찍고, 풍경을 눈에 새기고, 스치는 바람의 감촉을 기억하며 가을의 정취에 흠뻑 젖어 든다.

장불재에서 백마능선으로 향하는 길은 무등산 억새 여행의 백미로 꼽힌다. 하늘거리는 억새꽃이 마치 백마의 갈기처럼 보인다 하여 이름 붙여진 이 길은,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하늘과 맞닿을 듯 펼쳐진다. 한 방문객이 “구름 위를 산책하는 착각에 빠진다”고 표현했을 만큼 몽환적인 풍경 속에서 걷다 보면 세상의 근심이 바람결에 실려 가는 듯하다.

바람이 지휘하는 억새의 군무

무등산 억새와 서석대
무등산 억새와 서석대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다시 장불재로 돌아와 군부대 옆길을 따라 중봉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억새의 향연은 절정에 이른다. 중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억새밭은 장불재와는 또 다른 밀도와 규모를 자랑한다.

억새는 빛의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해를 등지면 쓸쓸한 가을의 정취를 머금은 황금빛으로, 해를 마주하면 눈부신 순백의 너울로 변신한다.

그리고 그 은빛 파도 너머로, 수만 년의 세월을 견뎌온 서석대의 웅장한 주상절리가 병풍처럼 버티고 서 있는 풍경은 오직 무등산국립공원만이 선사할 수 있는 감동의 화룡정점이다. 이 순간, 탐방객은 찰나의 아름다움과 영겁의 시간이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시간을 넘어선 아름다움을 만나러

무등산
무등산 / 사진=ⓒ한국관광공사 박성근

입장료무료이지만, 주차장은 유료로 운영되며, 승용차 기준 비수기에는 4,000원, 성수기에는 5,000원의 요금이 적용된다. 또한 안전한 탐방을 위해 계절별 입산 가능 시간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4월부터 10월까지의 하절기에는 오전 4시부터 오후 5시까지, 11월부터 3월까지의 동절기에는 오전 5시부터 오후 4시까지 입산이 허용된다.

화려한 단풍도, 순백의 설경도 저마다의 매력이 있지만,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의 장엄한 바위산 위에서 펼쳐지는 무등산의 억새는 꾸미지 않은 본질적인 아름다움으로 우리에게 말을 건다.

그것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8,500만 년의 시간과 지금 이 순간의 바람이 함께 빚어낸 위대한 예술작품이다. 이번 가을, 오래도록 귓가에 맴돌 은빛 속삭임을 듣고 싶다면 주저 없이 무등산으로 향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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