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절벽 680개 논과 명승 제15호로 보존되는 선조들의 삶

새벽 물안개가 남해안을 감싸는 시각, 응봉산과 설흘산 사이로 떠오르는 햇살이 바다와 맞닿은 비탈을 비춘다. 파도 소리만 들리던 해안가 산자락에 108개 층이 계단처럼 이어진 풍경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은 2012년 CNN이 ‘한국에서 꼭 가봐야 할 50곳’ 가운데 3위로 선정한 명소다. 2005년 명승 제15호로 지정된 이후 선조들이 척박한 땅에 새긴 삶의 흔적은 이제 국내외 여행자들이 찾는 대표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해안절벽과 산비탈이 만난 지점에서 탄생한 논의 곡선은 계절마다 다른 빛깔로 물들며, 바다와 어우러진 풍경은 한국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독특한 경관을 완성한다.
해안절벽에서 탄생한 108층 계단식 논

경상남도 남해군 남면 홍현리 남면로 679번길 21에 위치한 남해 가천다랭이마을은 설흘산과 응봉산 사이 해안절벽 위에 자리한 농촌 마을이다.
급경사 지형으로 선착장 조성이 불가능했던 이곳은 어업 대신 산비탈을 개간해 논농사로 생계를 이어온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형성된 계단식 논이 현재의 독특한 경관을 만들어낸 셈이다.
마을 전체에 걸쳐 108층 계단 형태로 조성된 논은 총 680여 개에 달한다. 경사도는 평균 45도에서 최대 70도까지 이르며, 좁은 논 하나하나가 돌로 쌓아 올린 석축으로 경계를 이룬다. 해발 100~200m 사이에 형성된 논두렁 사이로 난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남해바다가 발아래 펼쳐진다.
CNN이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풍경

2012년 CNN이 발표한 ‘한국에서 가봐야 할 아름다운 곳 50선’에서 가천다랭이마을은 3위에 올랐다. 바다와 산비탈 계단식 논이 어우러진 독특한 경관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순간이었으며, 이후 국내외 관광객이 급증하는 계기가 됐다. 실제로 2011년 연간 30만 명이던 방문객은 2019년 70만 명까지 증가했다.
명승 제15호로 지정된 이 마을은 전체가 보존구역으로 관리되고 있다. 논의 형태와 석축은 물론 마을 내 건축물 신축·개축에도 제한이 있어 옛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는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게다가 2022년에는 국가중요농업유산 지정까지 추진되며 문화재적 가치를 더욱 인정받고 있다.
마을 내부에는 경남민속자료 제13호로 지정된 가천 암수바위가 자리한다. 성숭배 신앙 유적인 이 바위는 마을 주민들의 전통 신앙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문화유산이다. 남해바래길 1코스인 ‘다랭이지겟길’은 해안 산책로와 논두렁길을 연결하며 1시간 남짓 걷기 좋은 코스를 제공한다.
사계절 다른 매력과 6월 다랭이논 축제

겨울철 눈이 내린 후 다랭이마을은 논의 경계선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하얀 설경이 계단식 논의 곡선을 또렷하게 강조하며, 이 시기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한 폭의 수묵화처럼 펼쳐진다.
특히 매년 6월 초에는 다랭이논 축제가 열린다. 황소가 논을 가는 전통 써레질 시범과 모내기 체험, 미꾸라지 잡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도시에서 접하기 힘든 농경 문화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주말 이틀간 진행되는 축제 기간에는 전래놀이와 공연도 함께 열려 가족 단위 관광객과 외국인 방문객에게 인기가 높다.
노을 시간대에 방문하면 석양이 남해바다를 물들이는 순간과 논의 실루엣이 조화를 이룬다. 오전 일찍 찾으면 관광객이 적어 여유롭게 산책할 수 있으며, 사진 촬영을 위해서는 전망대와 논두렁길을 모두 이용하는 편이 좋다.
무료 개방에 24시간 연중무휴 운영

가천다랭이마을은 입장료 없이 24시간 개방되며 연중무휴로 운영된다. 다만 실제 주민이 거주하는 마을이므로 이른 새벽이나 늦은 밤 방문 시 소음에 유의해야 한다. 전망대와 산책로는 정비가 잘 되어 있으나 경사 구간이 있어 편한 신발을 착용하는 편이 안전하다.
남해공용터미널에서 농어촌버스 404, 402, 405, 406, 408번을 이용하면 30~40분 만에 가천다랭이마을 정류장에 도착하며, 정류장에서 마을까지는 도보 1~6분 거리다. 마을 주차장이 있으나 주말에는 관광버스와 승용차로 만차가 될 수 있어 이른 시간 방문을 권장한다.

가천다랭이마을은 척박한 환경을 딛고 일궈낸 선조들의 땀과 자연이 빚어낸 예술작품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108층 계단식 논이 만든 곡선과 남해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은 방문객에게 잊지 못할 감동으로 남는 셈이다.
사계절 다른 빛깔로 물드는 논의 아름다움을 직접 눈에 담고 싶다면, 이번 주말 남해로 향해 명승 제15호가 선사하는 특별한 경험을 만나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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