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료는 0원 단풍은 100점”… 가을이면 전국 사람들 몰리는 국내 최고 가을 트레킹 명소

입력

광주 남한산성
단풍과 성곽이 빚어낸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길

남한산성 전경
남한산성 전경 / 사진=ⓒ한국관광공사 김학리

서울 근교의 가을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만약 이번 주말, 단순한 단풍 구경을 넘어 발끝으로 역사의 무게를 느끼는 깊이 있는 트레킹을 원한다면 답은 남한산성이다.

경기도 광주시와 성남시에 걸쳐 있는 이곳은 사계절 내내 훌륭한 산책로지만, 가을은 유독 특별하다. 울긋불긋한 단풍이 성곽을 감싸는 아름다움 뒤로, 이 땅이 품고 있는 치열하고도 슬픈 역사의 서사가 함께 물들기 때문이다.

수많은 침략을 막아낸 철옹성이자, 결국 왕이 직접 걸어 나와 항복해야 했던 비극의 현장. 2014년 그 독보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곳은 이제 서울 도심을 한눈에 조망하는 최고의 전망대가 되었다. 1636년의 절망과 2025년의 감탄이 공존하는 곳, 남한산성 둘레길의 핵심을 짚어본다.

“1코스 3.8km: 왕이 걸어 나간 ‘굴욕의 문’을 걷다”

남한산성 가을 전경
남한산성 가을 전경 / 사진=ⓒ한국관광공사 김학리

남한산성 탐방의 시작은 공식 주소인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 742의 방문자 센터(산성로터리 중앙주차장 인근)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이곳에서 팸플릿을 챙겨 총 5개의 탐방 코스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코스는 1시간 내외의 짧은 2코스(2.9km)부터 3시간 이상 걸리는 5코스(7.7km)까지 다양하지만, 남한산성의 핵심 서사를 체험하고 싶다면 단연 1코스(3.8km, 약 1시간 20분 소요)를 추천한다.

1코스(산성로터리 → 북문 → 서문 → 수어장대 → 영춘정 → 남문 → 산성로터리)가 특별한 이유는 이 길에 ‘그 문’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서문(우익문)이다.

1636년 병자호란 발발 후, 인조는 청나라 군대에 밀려 이곳 남한산성으로 피신해 47일간의 처절한 항전을 벌였다. 하지만 혹독한 추위와 식량 부족, 압도적인 군사력 앞에 결국 항복을 결심한다. 1637년 1월 30일, 인조가 세자와 함께 청 태종에게 항복(삼전도의 굴욕)을 하기 위해 성을 나설 때 통과해야 했던 문이 바로 이 서문이다.

“1636년의 절망 vs 2025년의 파노라마”… 성곽의 역설

남한산성 항공사진
남한산성 항공사진 / 사진=ⓒ한국관광공사 김학리

1코스의 하이라이트인 서문과 최고 지점인 수어장대 인근은 남한산성에서 가장 압도적인 조망을 자랑하는 ‘뷰 맛집’이다. 성곽 너머로 펼쳐지는 풍경은 이곳이 왜 수도 서울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였는지 실감하게 한다.

하지만 이 풍경은 극적인 ‘역사의 역설’을 품고 있다. 47일간 성에 고립되었던 인조와 신하들이 성곽 너머로 보았던 것은 성을 겹겹이 포위한 청나라 군대의 깃발과 절망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2025년 오늘, 우리가 같은 자리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경이롭다. 저 멀리 우뚝 솟은 롯데타워와 남산타워, 빼곡하게 들어찬 서울과 성남의 스카이라인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 풍경은, 치욕의 역사를 딛고 선 대한민국의 눈부신 현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아름다운 단풍과 화려한 도시 풍경을 배경으로, 방문객들은 수백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이곳에 겹겹이 쌓인 역사의 층위를 동시에 체험하게 된다.

“유일하게 남은 지휘소, 수어장대에 오르다”

남한산성 가을
남한산성 가을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1코스와 2코스(2.9km, 약 1시간 소요)가 공통으로 거치는 수어장대는 남한산성의 군사적 심장부다. 성내에 있던 5개의 장대(지휘소)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건축물로, 성 내부와 외부의 동태를 가장 잘 살필 수 있는 최고 지점에 위치한다.

이곳은 인조가 직접 군사들을 독려하며 지휘했던 곳이기도 하다. 단층으로 지어졌던 것을 영조 대에 2층으로 증축했으며, 그 웅장함과 전략적 위치만으로도 남한산성의 역사적 가치를 증명한다.

이처럼 남한산성은 단순한 성곽이 아니다. 201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17세기 동아시아의 다양한 축성술이 집약된 군사 건축의 살아있는 모범”이었기 때문이다. 1코스와 2코스를 걷는 것은 이 위대한 유산의 핵심부를 직접 밟아보는 행위다.

“주차 지옥 vs 9번 버스”… 가장 현명한 방문 전략

남한산성 둘레길
남한산성 둘레길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아무리 훌륭한 명소라도 접근성이 나쁘면 망설여진다. 특히 가을 단풍철 주말, 남한산성의 중앙주차장(산성로터리)은 ‘주차 지옥’으로 변한다. 주차 요금도 평일(3,000원)과 달리 주말 및 공휴일에는 승용차 기준 1일 최대 5,000원으로 인상된다. 소중한 주말 시간을 주차 대기에 허비하고 싶지 않다면, 답은 대중교통이다.

가장 완벽한 해법은 지하철 8호선 산성역에서 내리는 것이다. 2번 출구로 나와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9번 혹은 52번 버스를 타면, 구불구불한 산길을 편안하게 올라 종점인 ‘남한산성 로터리’까지 약 15~20분 만에 도착한다.

주차 스트레스 없이 여유롭게 트레킹을 시작할 수 있으며, 하산 후에는 로터리 인근의 다양한 맛집에서 식사를 즐기기에도 완벽한 동선이다. 참고로 성곽 공원 자체의 입장은 무료이며, 성 내부에 위치한 남한산성 행궁은 별도의 입장료(어른 2,000원, 청소년 1,000원)가 있으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결론: 가을 단풍에 묻힌 역사의 교훈을 걷다

남한산성
남한산성 / 사진=ⓒ한국관광공사 김학리

남한산성의 5개 둘레길은(1코스 3.8km, 2코스 2.9km, 3코스 5.7km, 4코스 3.8km, 5코스 7.7km) 저마다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꼭 정해진 코스를 따를 필요 없이, 샛길을 이용해 성곽 안팎의 풍경을 자유롭게 즐기는 것도 좋다.

하지만 이 가을, 남한산성을 찾는다면 단풍의 화려함 너머에 있는 역사의 교훈을 함께 걸어보길 추천한다. 47일간의 항전이 펼쳐졌던 지휘소 ‘수어장대’에 올라보고, 왕이 직접 굴욕의 걸음을 내디뎠던 ‘서문’을 통과해 보자.

그 길에서 마주하는 서울의 눈부신 풍경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과 지켜내야 할 것들의 가치를 동시에 속삭여줄 것이다.

전체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