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담장과 목화밭이 있는 명소

한겨울 찬바람이 낙동강 너머로 불어오는 오후, 대구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에는 고요함이 더욱 깊어진다. 기와지붕 위로 서리가 내려앉고, 흙담 사이로 난 좁은 골목에는 발자국 소리만이 또렷하게 울린다.
문익점 18세손이 1840년경 인흥사 옛 절터를 정전법으로 구획해 세운 이곳은 단순한 집성촌을 넘어 조선 후기 양반가옥의 원형을 간직한 문화유산이며, 담장 너머로 펼쳐진 목화밭은 면화 시배의 역사를 오롯이 기억하고 있다.
입장료도, 주차비도 없는 이 마을은 사계절 언제든 열려 있다. 한겨울에는 한산한 골목을 따라 돌담길을 걸으며 조선 시대 선비의 숨결을 느낄 수 있고, 여름이면 능소화가 흙담을 타고 올라 주황빛 풍경을 선사하는 공간이다.
절터가 명당으로 변한 마을

남평문씨본리세거지(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인흥3길 16)는 낙동강 서쪽 화원읍 본리리 인흥마을에 자리한 집성촌이다.
1995년 5월 12일 대구광역시 민속문화재 제3호로 지정된 이곳은 면적 11,701제곱미터 규모로, 주택 9호와 수봉정사·광거당·인수문고 등 문중 건물을 포함해 총 11호가 모여 있다.
문익점의 18세손인 문경호가 1840년경 인흥사의 옛 절터를 구획해 터를 잡았으며, 명당으로 알려진 이 땅을 정전법에 따라 네모반듯하게 나눈 뒤 길과 집을 바둑판 형태로 배치했다. 평탄한 지형 위에 세운 이 마을은 도로와 터전이 정연하게 얽혀 있어 조선 후기 계획 마을의 전형을 보여주는 셈이다.
결백을 지키는 집 수백당

마을 한쪽에 자리한 수백당은 ‘결백을 지키는 집’이라는 뜻을 담은 건물이다. 수봉 문영박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이 재실은 남평문씨 집안의 선비 정신을 상징하며, 청렴과 절개의 가치를 후대에 전하는 공간으로 기능했다.
단아한 기와지붕과 소박한 마루가 어우러진 수백당은 화려함보다 품격을 중시한 양반가의 미학을 보여준다. 마을 전면에 자리한 수봉정사는 손님을 접대하고 문중 모임을 여는 공간으로 쓰였으며, 넓은 마루와 기와지붕이 조화를 이루는 이 건물은 외부인을 맞이하는 문중의 얼굴이다.
광거당은 문중 자제들의 학문 수양을 위한 강당 겸 재실로 기능했다. 책을 읽고 토론하며 학문을 닦던 이 공간은 남평문씨 집안의 교육 전통을 고스란히 담고 있으며, 지금도 고즈넉한 마당과 함께 그 흔적을 보존하고 있다.
능소화 담장과 목화밭, 사계절 풍경

6월 전후가 되면 흙담을 타고 오른 능소화가 주황빛 꽃을 피워내며 마을 전체를 물들인다. 기와지붕과 돌담, 능소화 덩굴이 어우러진 골목은 전국적으로 알려진 촬영 명소가 되었으며,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 장소로 손꼽힌다.
마을 입구에는 문익점 동상이 서 있고, 그 뒤편으로는 목화밭이 조성되어 있다. 가을이면 목화송이가 터지고, 겨울에도 일부 솜털이 남아 면화 시배의 역사를 상기시킨다.
인흥원 연못 일대에서는 소나무와 한옥 지붕이 수면에 반영되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으며, 해 질 무렵 연못가를 거닐면 고요한 분위기가 깊어지는 편이다.

남평문씨본리세거지는 현재까지 입장료 없이 개방되고 있으며, 연중무휴로 알려져 있다. 마을 입구에는 소규모 주차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마을 내부는 차량 진입이 제한된 좁은 골목 구조라 도보 이동이 중심이다.
대구역에서 도시철도와 버스를 환승하면 약 5070분, 승용차로는 약 3040분이 소요된다. 겨울철에는 한산한 골목을 따라 돌담길을 걷기에 적합하며, 마을 입구 문익점 동상 뒤편 목화밭에는 일부 솜털이 남아 면화 시배의 역사를 상기시킨다.
골목과 돌담길 바닥이 고르지 않은 구간이 있어 편한 워킹화를 권장하며, 야간에는 조명이 제한될 수 있어 낮 시간 방문이 적합하다. 인근 화원유원지(차량 약 510분), 사문진나루터(차량 약 1020분), 비슬산(차량 약 30~40분) 등과 연계해 낙동강 강변 경관과 산행을 함께 즐길 수 있다.

남평문씨본리세거지는 조선 후기 양반가옥 군과 문중 서고, 전통 마을 경관이 조화를 이루는 보기 드문 문화유산이다.
정전법으로 구획된 반듯한 길과 9채의 한옥, 수백당에 담긴 청렴 정신과 1만 권 장서를 품은 인수문고는 시간의 깊이를 고스란히 전하는 셈이다.
찬바람 속에서도 고요히 서 있는 흙담과 기와지붕을 바라보고 싶다면, 한겨울 오후에 인흥마을로 향해 돌담길을 천천히 걸어보길 권한다. 입장료 없이 열린 이 마을은 조용한 산책과 사색을 원하는 이들에게 더없이 소중한 쉼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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