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료·주차비 모두 무료라고요?”… 보물·출렁다리·호수 둘레길 품은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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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오어사
보물 동종과 7.1km 숲길의 조화

포항 오어사 전경
포항 오어사 전경 / 사진=ⓒ한국관광공사 이범수

12월의 운제산에 찬 공기가 내려앉으면, 산자락은 고요 속에 깊은 침묵을 머금는다.

낙엽이 모두 떨어진 나뭇가지 사이로 겨울 햇살이 또렷하게 스며들고, 잔잔한 호수는 차가운 공기를 품어 더욱 맑은 수면을 드러내는 그 한가운데, 천년을 묵묵히 지켜온 산사 하나가 자리한다.

신라 진평왕 때 창건되어 원효, 혜공, 의상, 자장 등 신라 4대 조사와 인연을 맺은 이 사찰은 국가보물 동종과 잔잔한 호수를 동시에 품고 있어 더욱 특별하다. 천년의 역사와 7.1km 겨울 둘레길을 갖춘 이곳의 매력을 알아봤다.

포항 오어사

포항 오어사 풍경
포항 오어사 풍경 / 사진=ⓒ한국관광공사 이범수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오천읍 오어로 1에 자리한 오어사(吾魚寺)는 신라 26대 진평왕(재위 579~632년) 때 창건된 천년 고찰로, 처음에는 ‘항사사(恒沙寺)’라 불렸으나 독특한 일화로 인해 지금의 이름을 얻게 되었다.

원효대사와 혜공선사가 이곳에서 수도할 때 법력으로 죽은 물고기를 살리는 시합을 벌였는데, 한 마리는 다시 힘차게 헤엄쳤지만 다른 한 마리는 결국 살아나지 못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 과정에서 두 스님이 서로 “저 물고기는 내가 살린 고기다”라며 다투었다는 이야기에서 ‘나 오(吾)’, ‘물고기 어(魚)’를 따 오어사라는 이름이 붙었다.

1741년 조선 영조 때 중건된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다포식 건물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52호에 지정되어 있으며, 단청과 공포 사이마다 세월이 조용히 스며 있다.

1216년 제작된 고려 동종

포항 오어사 동종
포항 오어사 동종 / 사진=ⓒ한국관광공사 이범수

오어사의 가장 중요한 보물은 1216년 고려 고종 3년에 제작된 동종(국가보물 제1280호)이다. 높이 96cm의 비교적 아담한 크기지만, 섬세한 문양과 명문을 지니고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은 편이다.

원효대사의 삿갓 역시 이 사찰의 상징적인 유물이다. 전설 속 원효의 기개와 수행을 떠올리게 하는 이 유물은 현재 사찰 유물전시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방문객들은 이를 통해 617년에 태어나 686년 70세의 나이로 입적한 원효 대사의 숨결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

또한 사찰 한편에 서 있는 해수관음상은 뒤편의 푸른 운제산 능선과 앞쪽의 잔잔한 오어지를 배경으로 하여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완성하는데, 장엄하면서도 온화한 표정의 관음상 앞에 서면 답답했던 마음이 스르르 풀리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호수 가로지르는 118.8m 출렁다리

원효교 출렁다리
원효교 출렁다리 / 사진=ⓒ한국관광공사 이범수

오어사 앞에 펼쳐진 오어지는 사찰과 함께 이곳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총 길이 약 7.1km의 둘레길은 한 바퀴를 도는 데 약 2시간 정도가 소요되며, 부담스럽지 않은 거리와 난이도 덕분에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 특히 인기가 많은 편이다.

둘레길 초입에는 호수를 가로지르는 출렁다리 ‘원효교’가 자리하고 있는데, 전체 길이 118.8m, 폭 2m, 주탑 높이 15.05m의 이 다리는 에메랄드빛 호수를 한눈에 내려다보며 건널 수 있는 오어지의 하이라이트로 손꼽힌다. 물 위를 흔들흔들 건너는 짧은 여정만으로도 도시에서 쌓였던 긴장이 조금씩 풀리는 기분을 맛볼 수 있다.

둘레길을 걷다 보면 울창한 숲과 호수가 번갈아 나타나고, 고요한 물결, 나뭇잎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 간간이 들려오는 새소리가 만들어내는 배경음 속에서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여행이 되기 쉽다. 만약 시간이 부족하다면 원효교까지만 왕복하는 짧은 코스를 선택해도 좋다.

포항 오어사 대웅전
포항 오어사 대웅전 / 사진=ⓒ한국관광공사 이범수

오어사는 상시 개방으로 연중무휴 방문할 수 있다. 입장료와 주차비가 모두 무료이지만, 평일에도 방문객이 많아 주말에는 무료 공영주차장이 금방 만차가 되는 편이므로 가급적 이른 시간에 방문하는 것이 좋다.

사찰 경내에는 대웅전, 나한전, 설선당, 산령각 등의 전각이 자리하고 있으며, 화장실과 요사 등 기본적인 편의시설도 갖추고 있다.

오전에는 사찰 경내를 천천히 둘러보며 문화재를 관람하고, 오후에는 오어지 둘레길을 걷는 반나절 일정을 추천할 만하다.

포항 오어사 해수관음상
포항 오어사 해수관음상 / 사진=ⓒ한국관광공사 이범수

오어사는 규모가 크지 않지만, 그 작은 공간 속에 신라의 전설, 고려의 범종, 조선의 건축, 그리고 현대인의 휴식이 겹겹이 쌓여 있는 특별한 곳이다.

천년 역사를 품은 무료 사찰에서 고즈넉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지금 이곳으로 향해 신라 고승들의 발자취를 따라 걸어보길 권한다.

겨울 호수가 주는 고요함과 사찰의 평온한 기운이 일상에 지친 마음을 다독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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