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힌디기,
유네스코가 인정한 살아있는 지질 박물관

동해의 푸른 파도가 쓰다듬는 포항의 어느 해안가, 상식을 뒤엎는 눈부신 풍경이 펼쳐진다. 온통 새하얀 암석이 거대한 성벽처럼 솟아올라 쪽빛 바다와 극적인 대비를 이루는 곳. 바로 2024년 5월, 유네스코가 그 가치를 인정한 경북 동해안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의 심장부, 힌디기다.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불과 몇 걸음 떨어진 곳의 검붉은 바위와 나란히 서서, 전혀 다른 두 개의 화산이 폭발했던 격렬한 역사를 온몸으로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힌디기를 걷는 것은 단순한 산책이 아닌, 지구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장엄한 탐험이다.
포항 힌디기

이야기의 현장은 경북 포항시 남구 동해면 호미로2790번길 20-18 인근에 자리한다. 별도의 입장료나 정해진 운영 시간 없이, 누구나 무료로 이용 가능한 소규모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면 곧바로 탐방이 시작된다.
이름의 유래부터 흥미롭다. 과거 이곳 사람들은 눈처럼 하얀 바위가 언덕을 이룬 모습을 보고 ‘흰덕’이라 불렀고, 이 발음이 오랜 세월을 거쳐 ‘힌디기’로 굳어졌다고 추정된다.

해안을 따라 잘 정비된 데크길에 오르면, 발밑의 풍경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급격하게 변하는 경이로운 순간을 마주한다. 길의 시작점에서 보이던 평범한 해안가 바위, 즉 ‘선바우’와 ‘먹바우’라 불리는 암석들은 검붉은 색을 띤다. 이는 유동성이 큰 현무암질 마그마가 분출하며 남긴 ‘현무암질 각력암’이다.
하지만 몇 걸음 더 옮기면, 풍경은 거짓말처럼 온통 순백의 세상으로 바뀐다. 이것이 바로 끈적끈적한 유문암질 마그마가 폭발적으로 분출하며 쌓아 올린 ‘백색의 유문암질 응회암’으로 이루어진 힌디기의 본모습이다.
한자리에서 목격하는 지질학의 기적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암석의 색과 성분이 완전히 달라지는 이 모습이야말로 힌디기가 유네스코의 인정을 받은 핵심적인 이유다. 이는 성질과 종류가 전혀 다른 두 개의 마그마가 거의 같은 시기, 같은 장소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분출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방문객은 데크길 위를 걷는 것만으로도 수백만 년 전 호미반도 일대에서 벌어졌던 격렬한 지각운동의 과정을 생생하게 목격하는 셈이다. 검은 바위와 흰 바위가 맞닿은 경계선은 지구의 역사가 남긴 거대한 타임캡슐 그 자체다.

데크길 끝에서 이어지는 작은 자갈 해변은 이 장엄한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다. 거대한 흰 바위 병풍을 배경으로 인생 사진을 남기려는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규모 자체도 압도적이지만, 파도와 바람이 오랜 시간 빚어낸 기암괴석의 신비로운 형태는 보는 내내 감탄을 자아낸다.
이제 힌디기는 단순한 포항의 숨은 명소가 아니다. 전 세계가 함께 보존하고 연구해야 할 소중한 지질 유산으로 거듭났다.
입장료도, 굳게 닫힌 문도 없는 이 열린 박물관에서 책으로는 배울 수 없는 살아있는 지구의 역사를 직접 느껴보길 바란다. 검은 바위와 흰 바위가 들려주는 태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순간, 당신의 포항 여행은 한층 더 깊어질 것이다.

















전체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