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2년 창건 천년 사찰과 반달형 유리 바닥 위 동해 조망

한겨울 산행이 부담스러운 이유는 명확하다. 정상을 향한 가파른 경사가 체력을 소진시키고, 미끄러운 빙판길이 발목을 붙잡는다. 하지만 정상을 목표로 하지 않는 산행은 어떨까. 계곡을 따라 걷는 동선이 주를 이루고, 폭포마다 쉬어 가는 여유가 허락되는 곳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경북 8경으로 꼽히는 이곳은 최고봉 향로봉이 해발 930m에 이르지만, 정작 트레킹 코스는 710m 삼지봉 아래 계곡을 중심으로 설계됐다. 12개 폭포가 이어지는 물길을 따라 왕복 3시간이면 충분하며, 시니어 등산객도 무리 없이 오를 수 있는 난이도가 매력이다.
신라 역사가 깃든 계곡 트레킹 코스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송라면 보경로 523에 위치한 포항 내연산은 태백산맥 줄기에 속한 산으로, 향로봉(930m)을 최고봉으로 삼지봉이 정상을 이룬다.
진평왕 24년(602년) 지명법사가 창건한 보경사가 입구에 자리하며, 9세기 진성왕이 견훤의 난을 피해 이곳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산 이름 ‘내연’은 안쪽으로 깊게 뻗은 산이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실제로 계곡이 산 안쪽 깊숙이 이어지는 지형적 특성이 돋보인다.
내연산 트레킹은 보경사를 출발점으로 12개 폭포를 거쳐 소금강 전망대에 도달하는 왕복 코스다. 상생폭포, 보현폭포, 삼보폭포가 초반 약 1.5km 구간에 연달아 나타나며, 이후 보현암을 지나 전망대까지는 약 30분간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진다.
반달형 유리 바닥 위에서 펼쳐지는 조망

내연산 소금강 전망대는 절벽 끝에 설치된 반달형 투명 유리 바닥 구조가 특징이다. 발아래로 계곡과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며, 멀리 동해 수평선까지 조망할 수 있어 ‘한국의 장가계’라는 별칭이 붙었다.
전망대에 오르기 전 거쳐야 하는 연산폭포는 높이 약 30m로, 학소대 절벽을 배경으로 한 웅장한 규모가 인상적이다. 이어지는 관음폭포는 72m 높이로 12폭포 중 가장 크며, 폭포 뒤편 동굴 공간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한다.
12폭포는 상생, 보현, 삼보, 잠룡, 무풍, 관음, 연산, 은폭, 복호1, 복호2, 실폭, 시명폭포로 구성된다. 각 폭포마다 크기와 형태가 다르며, 계절에 따라 수량이 변화해 사계절 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봄에는 신록이, 여름에는 물놀이 명소로, 가을에는 단풍이 어우러지며, 겨울에는 얼어붙은 폭포와 설경이 독특한 경험으로 남는다.
겸재 정선이 화폭에 담은 풍경

조선 후기 화가 겸재 정선은 1733년부터 1735년까지 약 2년간 청하현감으로 재직하며 포항에 머물렀다. 이 시기 그린 ‘내연삼용추도’는 내연산 12폭포 중 세 곳의 물줄기를 담은 진경산수화로, 2019년 명승으로 지정되며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보경사 경내에는 보물 7점이 지정되어 있으며, 원진국사비, 대적광전, 동종 등이 천년 역사를 증명한다. 특히 대적광전은 조선 초기 양식을 재현한 건축물로, 내부에 1만 8,000불이 봉안되어 있어 종교문화 체험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내연산이 자리한 지역은 신생대 화산암 지질로 형성됐으며, 경북 동해안 국가지질공원에 포함된다. 화산활동으로 생성된 기암괴석과 절벽이 계곡 풍경을 독특하게 만들며, 지질학적 배경이 트레킹 코스에 학술적 의미를 더한다.
월포역 개통으로 대중교통 접근성 대폭 개선

내연산 입구 보경사까지는 동해선 월포역에서 버스 5000번을 이용하면 약 20분 만에 도착한다. 2020년 동해선 철도 개통 이후 월포역이 생기며 대중교통 접근성이 크게 향상됐고, 포항역에서는 도심환승센터를 경유해 약 50분에서 1시간이 소요된다.
버스 요금은 2,000원에서 4,000원 사이이며, 25분 간격으로 운행해 이용이 편리하다. 자가용으로는 포항 시내에서 약 30분, 대구나 경주에서는 약 2시간 거리에 위치한다.
2023년 5월 4일부터 보경사 입장료가 전면 폐지되어 무료로 방문할 수 있으며, 공영주차장 역시 무료로 운영된다. 주차장 규모는 약 1,000대를 수용할 수 있어 주말에도 주차 공간 확보가 가능하다.

내연산 소금강 전망대는 정상 등정 부담 없이 계곡 풍경을 즐기는 트레킹 명소다. 12개 폭포와 반달형 유리 전망대가 만든 조망은 시니어부터 초보 등산객까지 폭넓은 방문객에게 만족감을 제공하며, 신라 역사와 조선 화가의 흔적이 더해져 문화적 깊이까지 갖췄다.
겨울의 맑은 공기 속에서 바위와 물길의 선명한 구조를 확인하고 싶다면, 포항 내연산으로 향해 계곡을 따라 걷는 여유를 경험해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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