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 선진리성, 임진왜란 왜성에 피어난 벚꽃의 역설

사천만의 바람이 조금씩 온기를 머금기 시작하는 3월 하순, 경남 해안가 구릉 위로 흰 꽃구름이 내려앉는다. 성벽 너머로 펼쳐지는 꽃 터널은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풍경이라 발걸음이 절로 멈춘다. 역사의 상처를 간직한 돌담이 봄빛 아래 이토록 고요하게 빛나는 곳이 있다.
이곳은 임진왜란(1592~1598) 당시 왜군이 남해안 거점으로 쌓은 왜성(倭城)이다. 1998년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사천선진리성(泗川船津里城)은 선진리왜성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며, 400년 세월을 버텨온 성벽과 봄마다 흐드러지는 벚꽃이 묘한 대비를 이루는 공간이다.
침략자가 세운 성곽과 이순신 장군의 승첩기념비가 같은 땅 위에 공존하는 이 역설적인 풍경은, 봄꽃의 화사함 속에서 더욱 깊은 울림을 남긴다.
사천만 인근 구릉 위에 자리한 왜성의 역사

사천선진리성(경남 사천시 용현면 선진리 770 일원)은 사천만 인근 구릉 위에 자리한 임진왜란 시기 왜군 축조 성곽이다.
일본군이 남해안 일대에 구축한 약 30여 개 왜성 중 하나로, 순천왜성·고성왜성·부산왜성과 함께 당시 왜군의 남해안 방어 거점을 이루었다.
해안을 조망할 수 있는 구릉 지형을 활용해 쌓은 이 성은 석성과 토성이 결합된 일본식 성곽 구조를 지니며, 높은 곳에서 사천만 일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성 내에는 천수각터와 문지, 장대지 흔적이 잔존하며, 일부 구간에서 당시 축성 방식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성벽을 가득 채우는 700여 그루의 봄 벚꽃

선진리성이 봄마다 주목받는 것은 성곽 안팎에 심어진 700여 그루의 벚나무 덕분이다. 경남 지역 통상 3월 하순에서 4월 초순, 성벽을 따라 만개한 벚꽃은 돌담과 어우러져 독특한 풍경을 빚어낸다.
역사 유적지 위에 흐드러지는 꽃잎은 단순한 봄꽃 명소와는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며, 꽃길을 걸으며 성벽의 굴곡을 따라 이동하는 산책 코스가 방문객 사이에서 특히 인기를 끈다.
야외공연장이 마련되어 있어 봄철이면 이를 중심으로 사천 지역 벚꽃 축제와 연계 행사도 열린다. 벚나무 식재 시기와 경위에 대해서는 다양한 주장이 있으며, 방문 전 현지 안내를 통해 확인하는 편이 좋다.
거북선 최초 실전 투입의 현장, 이충무공 승첩기념비

선진리성은 꽃구경만 하기엔 아까운 역사 콘텐츠를 품고 있다. 성 내에는 이충무공 사천해전 승첩기념비와 호국영령 전적기념비가 나란히 서 있다.
사천해전은 1592년 음력 5월 29일(양력 6월 18일) 이순신 장군의 1차 출정 중 세 번째 해전으로, 거북선이 최초로 실전 투입된 역사적 전투로 기록된다.
왜군이 쌓은 성 안에 그 왜군을 무찌른 장군의 기념비가 세워진 구도는 이곳이 단순한 관광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셈이다. 약석루(藥石樓)는 현재 붕괴된 상태이나 토성과 문지, 장대지 흔적은 잔존하여 성곽의 원형을 어느 정도 가늠해볼 수 있다.
무료 입장에 연중 개방, 인근 관광지와의 연계 정보

선진리성은 입장료 없이 연중무휴로 개방되어 있어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다. 주차 공간도 갖추고 있으며, 문의는 055-854-2189로 가능하다.
단, 입장료·운영시간·연락처 등 세부 사항은 현장 상황에 따라 변동될 수 있어 방문 전 사천시청 또는 현지를 통해 확인하는 것을 권한다.
인근에는 삼천포와 초양도를 잇는 사천 바다케이블카, 삼천포항 등 연계 관광지가 있어 당일치기 코스로 묶기 좋다. 봄철 벚꽃 절정기에는 방문객이 집중되므로 이른 오전 방문을 고려해볼 만하다.

선진리성은 화려한 봄꽃과 깊은 역사가 한 공간에서 만나는 드문 장소다. 침략의 흔적 위에 피어난 벚꽃은 계절이 지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만큼, 3월 하순에서 4월 초순 사이의 짧은 절정을 놓치지 않는 것이 관건이다.
경남 해안가에서 꽃과 역사를 함께 거닐고 싶다면, 이 봄 사천 선진리성을 일정에 넣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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