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연서원
조선 시대 숨결 그대로 남은 서원

서론 가을이면 붉은 단풍과 고즈넉한 풍경으로 방문객을 맞이하는 경상북도 성주의 한 서원이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곳을 단순히 조용한 무료 산책로로만 알고 지나친다.
조선 중기 실학의 연원을 세운 학자가 직접 터를 잡고, 당대 최고 명필의 글씨가 현판으로 남은 이곳의 진정한 가치는 따로 있다. 바로 회연서원이다.
400년 느티나무와 한석봉의 현판

회연서원의 공식 주소는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동강한강로 9이다. 이곳은 1974년 12월 10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제51호로 지정된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서원 입구에 들어서면, 400년 넘는 수령을 자랑하는 거대한 느티나무 두 그루가 방문객을 압도한다. 이 고목들은 서원의 오랜 역사를 증명하듯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서원의 중심 건물인 강당으로 향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바로 회연서원이라고 쓰인 현판이다. 이 현판은 조선 중기 최고의 명필로 꼽히는 한석봉의 친필로, 그 자체만으로도 서원의 격을 높이는 귀중한 자료다.
이곳이 단순한 쉼터가 아닌, 역사적 무게를 지닌 공간임을 입증하는 첫 번째 증거다.
한강 정구가 터를 잡은 학문의 요람

이 서원은 조선 선조 때의 문신이자 대학자인 한강 정구(1543~1620)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한강 정구는 외증조부인 김굉필의 도학을 계승하고, 나아가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학풍을 통합하여 새로운 학통을 세운 인물로, 후대 실학의 연원이 되었다고 평가받는다.
서원의 역사는 1583년(선조 16)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강 정구가 이곳에 회연초당을 세우고 인재를 양성하던 것이 시초였다.
선생이 세상을 떠난 뒤, 제자들이 그의 뜻을 기리고자 1627년(인조 5) 초당이 있던 자리에 서원을 건립했다. 이후 1690년(숙종 16)에는 나라로부터 현판과 토지, 노비 등을 하사받는 사액서원이 되어 국가적 공인을 받았다.
비록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는 아픔을 겪었으나, 1970년대에 사당과 동·서재 등이 복원되며 현재의 모습을 되찾았다.

회연서원은 가을 단풍으로도 알려져 있지만, 이 서원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은 봄에 있다. 한강 정구 선생은 생전에 서원 앞뜰에 100그루의 매화나무를 직접 심고 백매원이라 이름 붙였다.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매화를 통해 학문과 인격을 닦고자 했던 선생의 뜻이 담긴 공간이다. 매년 이른 봄, 백매원에 매화가 만개할 때의 풍경은 회연서원의 백미로 꼽힌다.
가을에 방문하더라도 이 백매원의 존재를 알고 본다면, 서원의 풍경이 더욱 깊이 있게 다가올 것이다.
방문객을 위한 실용 정보

회연서원은 연중무휴로 운영되며, 입장료와 주차비는 모두 무료다. 서원 입구와 맞은편 공터에 주차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다만 방문 시간 확인은 필수다. 일부 정보와 달리, 문화관광해설사의 공식 안내 기준 운영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조용한 서원의 분위기를 만끽하고 싶다면 이 시간 내에 방문하는 것이 좋다.
대중교통 이용 시, 성주 버스터미널에서 수륜 또는 백운동 방면 0번 군내버스를 타고 ‘신정리 221’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도보 5분 이내로 도착할 수 있다.

회연서원은 입장료 없는 가을 단풍 명소를 넘어, 한강 정구 선생의 학문적 이상과 한석봉의 필체, 그리고 백매원의 매화 향기가 깃든 역사적 공간이다.
서원 뒤편으로는 성주가 자랑하는 무흘구곡의 제1곡인 봉비암의 절경도 조망할 수 있어, 역사 기행과 자연 탐방을 동시에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400년 고목 아래에서 단순한 휴식이 아닌, 조선 시대 학자의 깊은 숨결을 느껴볼 수 있는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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