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해미읍성, 둘레 1.8km 성벽 따라 걷는 역사 산책…300년 회화나무와 천주교 순교지 무료 개방

홍민정 기자

입력

수정

팔로우 Google

1.8km 성곽 산책로와 300년 회화나무가 전하는 기억

서산 해미읍성
서산 해미읍성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해질 무렵, 1.8km에 이르는 성벽 위로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고요한 성곽 너머로 펼쳐지는 들판은 겨울의 쓸쓸함을 그대로 간직한 채 자리하고 있다. 성문 앞 회화나무 한 그루가 300년 세월의 무게를 온몸으로 버티며 서 있고, 그 나무에 박힌 철사줄 흔적은 지나간 시간의 아픔을 증언한다.

겨울의 고요함이 특히 깊게 느껴지는 이 성곽은 서산 9경 중 1경으로 꼽힐 만큼 사계절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다.

조선 초기 방어 시설에서 천주교 순교 성지로, 다시 역사 유산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이 이곳에서는 하나의 풍경으로 어우러지는 셈이다.

태종의 강무에서 시작된 230년 군사 거점

서산 해미읍성 진남문
서산 해미읍성 진남문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서산 해미읍성(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남문2로 143)은 조선 태종 17년인 1417년부터 세종 3년인 1421년까지 약 4년간 축성된 병영성이다. 1416년 태종이 도비산에서 강무를 실시한 후 해미를 충청병영의 적지로 선정한 것이 축성의 시작이었으며, 이후 성종 22년인 1491년에 토성을 석성으로 보강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둘레 약 1.8km, 높이 약 5m 전후의 성벽이 196,381㎡(약 6만 평) 면적을 감싸고 있다. 정해현(貞海縣)의 ‘해(海)’자와 여미현(餘美縣)의 ‘미(美)’자를 결합한 지명처럼, 이곳은 바다와 아름다움이 만나는 입지에 자리한다.

동·서·남·북 네 방향에 문루가 세워졌으나 현재는 진남문만 복원되어 있으며, 홍예문 형태의 석조 구조가 조선 초기 축성 기술을 보여준다. 1417년부터 1652년까지 약 230년간 이곳은 충청병영의 중심지로 기능했다.

1천 명 처형된 천주교 박해의 현장

서산 해미읍성 풍경
서산 해미읍성 풍경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18세기 후반부터 이곳의 역할은 극적으로 변화한다. 1790년대부터 시작된 천주교 박해가 심화되면서 해미읍성은 내포 지역 천주교도들이 수감되고 처형되는 장소로 쓰이기 시작했다.

1866년 병인박해 당시에는 약 1천 명 이상의 신자가 이곳에서 순교했으며, 성 안 여숫골 자리개돌에서 참수형이 집행되곤 했다.

성 안에 자리한 300년 된 회화나무(호야나무)는 당시 고문의 증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1790년대부터 1880년대까지 천주교도들을 나무에 묶어 고문할 때 사용한 철사줄이 나무껍질 속에 박혀 있으며, 이 나무는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라 역사의 아픔을 증언하는 살아있는 유물인 셈이다.

성벽 둘레 1.8km, 사계절 다른 풍경

서산 해미읍성 성벽 위
서산 해미읍성 성벽 위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현재 해미읍성은 역사 유산이자 문화 체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성벽 위로는 둘레 1.8km에 이르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으며, 성곽을 따라 걸으면 개활지 너머로 펼쳐지는 들판과 멀리 안면도 방향 풍경이 조망된다.

겨울철에는 쌀쌀한 바람이 성벽 위를 스치지만, 고요하고 쓸쓸한 분위기 속에서 역사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 특히 눈이 내린 날이면 회색빛 성벽과 하얀 설경이 대비를 이루며 서산 9경 중 1경으로 꼽히는 겨울 풍경을 완성한다.

성 안에는 대나무 숲길과 초가마을 재현 구역이 조성되어 있다. 조선시대 민가를 재현한 초가에서는 옛 생활상을 엿볼 수 있으며, 대나무 숲은 계절마다 다른 빛깔로 방문객을 맞이한다. 겨울에는 초가지붕과 대나무 가지 위로 쌓인 눈이 조선시대 겨울 마을의 정취를 고스란히 재현한다.

하절기 새벽 5시부터, 무료 개방

서산 해미읍성 객사
서산 해미읍성 객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해미읍성은 계절에 따라 운영 시간이 다르게 적용된다. 하절기인 3월부터 10월까지는 오전 5시부터 오후 9시까지, 동절기인 11월부터 2월까지는 오전 6시부터 오후 7시까지 개방되며 연중무휴로 운영된다. 입장료와 주차비는 모두 무료이며, 주차 공간이 충분히 확보되어 있어 자가용 이용 시 편리하다.

특히 하절기 새벽 5시 개방 시간을 활용하면 일출과 함께 성곽을 거닐 수 있다. 이른 아침 안개가 걷히는 풍경은 낮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며, 고요한 시간 속에서 역사의 흔적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다. 겨울철에는 강풍이 불 수 있어 방한 복장을 갖추는 편이 좋고, 성벽 위 산책 시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해미읍성에서 도보 약 10분 거리에는 해미국제성지와 해미 천주교 성당이 자리한다. 순교자 유해 발굴지를 중심으로 조성된 국제성지에는 기념관과 기도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며, 천주교 순례자라면 반드시 들러야 할 코스다. 읍성과 성지, 성당을 연결하는 도보 순례길은 역사와 신앙이 만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서산 해미읍성 설경
서산 해미읍성 설경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서산 해미읍성은 조선 초기 왜구 방어 요새에서 천주교 순교 성지로, 다시 역사 문화 유산으로 변모한 공간이다.

1417년부터 1421년까지 쌓아 올린 성벽은 500년 넘는 세월 동안 군사 거점이자 박해의 현장으로 기능했으며, 현재는 과거의 아픔과 교훈을 전하는 교육의 장으로 남아있다.

겨울의 고요함 속에서 역사의 무게를 느끼고 싶다면, 계절의 변화 속에서 조선시대 성곽의 풍경을 만나고 싶다면 해미읍성으로 향해보길 권한다. 성벽 위를 걸으며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전체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