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균관 명륜당
400년 은행나무 아래서 만나는 조선의 가을

서울 종로구 도심 한복판, 분주한 대학가와 고궁 담벼락 사이에 조선 600년의 학문적 심장이 고스란히 보존된 공간이 있다. 조선의 왕세자부터 최고의 석학들이 ‘인륜을 밝히기 위해’ 모였던 곳, 바로 성균관 명륜당이다.
가을이 되면 이곳은 거대한 황금빛으로 타오른다. 하지만 이 풍경을 그저 아름다운 단풍 명소나 무료입장이 가능한 ‘가성비’ 여행지로만 접근한다면, 이 공간이 품은 본질적인 가치의 절반도 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곳에 뿌리내린 두 그루의 거목은 단순한 나무가 아닌, 조선의 이념과 학문의 정신 그 자체를 상징하는 살아있는 기념비다. 10월 말 절정을 맞는 이 거대한 생명력의 근원을 심층 취재했다.
“높이 26m, 둘레 12m”… 숫자가 증명하는 압도적 생명력

서울특별시 종로구 성균관로 31 (명륜3가)에 위치한 성균관 명륜당 마당에 들어서면, 웅장한 강당 건물보다 먼저 시선을 압도하는 존재와 마주한다. 바로 서울 문묘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59호)다.
흔히 알려진 높이 21m, 둘레 7.3m라는 수치는 정확한 정보가 아니다. 국가유산포털의 공식 실측 자료에 따르면, 이 나무의 높이는 26m에 달하며, 성인 여럿이 팔을 벌려도 모자란 가슴높이 둘레는 무려 12.09m에 이른다. 수령은 약 400년으로 추정되지만, 그 기개와 생명력은 수치를 초월하는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이 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유는 단순한 크기와 나이 때문만이 아니다. 1398년(태조 7) 성균관이 처음 세워지고, 임진왜란으로 모든 것이 불타 잿더미가 된 후 1601년(선조 34) 명륜당이 중건되는 과정을 모두 지켜본 역사의 산증인이기 때문이다.
왜 하필 은행나무인가? 공자의 ‘행단’ 고사

그렇다면 왜 조선 최고의 교육기관 앞뜰에는 유독 은행나무가 심겨졌을까? 그 유래는 유교의 시조인 공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전설에 따르면 공자는 은행나무 단 아래서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전해지는데, 이를 ‘행단’이라 부른다. ‘행’은 본래 살구나무를 뜻하지만, 은행나무를 지칭하는 의미로도 통용되었다. 유학을 국가의 근본으로 삼은 조선은 최고의 학부인 성균관을 세우면서 공자의 ‘행단’ 고사를 본받고자 했다.
1519년(중종 14) 성균관 대사성이었던 윤탁이 이 고사를 따라 은행나무 두 그루를 심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즉, 명륜당 앞의 은행나무는 단순한 조경수가 아니라, ‘이곳이 바로 공자의 가르침을 잇는 조선 학문의 중심’임을 선포하는 강력한 상징물이었던 것이다.
‘궁궐과 다른 ‘머무름의 자유’

성균관 명륜당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이 모든 역사적, 미학적 가치를 입장료 무료로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 바로 옆 담장을 공유하는 창경궁에 입장하기 위해 성인 기준 1,000원의 요금을 내야 하는 것과 비교된다.
하지만 이곳의 ‘무료’가 주는 진정한 혜택은 비용 절감이 아니다. 바로 ‘공간을 누리는 방식의 차이’에 있다. 정해진 관람 동선을 따라 이동하며 관람해야 하는 궁궐과 달리, 명륜당에서는 정해진 길이 없다.
누구든 천연기념물 은행나무 아래 놓인 벤치에 원하는 만큼 앉아 사색에 잠길 수 있다. 유생들이 거닐었을 명륜당 툇마루에 걸터앉아 고즈넉한 기와지붕 너머로 불어오는 가을바람을 맞이할 수도 있다. 이곳에서 ‘무료’는 곧 재촉받지 않고 역사의 공간에 온전히 머무를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한다.
동절기 시간 단축과 주차 요금

이 특별한 시간 여행을 계획한다면 방문 시간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하절기(3월~10월)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방되지만, 단풍이 절정에 이르는 동절기(11월~2월)가 시작되면 관람 시간이 오후 5시까지로 1시간 단축된다. 10월 말, 해가 지기 전에 방문하는 것이 황금빛 풍경을 즐기기에 가장 좋다. 연중무휴로 운영된다.
주차는 성균관대학교 인문사회과학캠퍼스 내부 주차장을 이용해야 한다. 요금은 최초 30분에 2,000원이며, 이후 10분당 500원이 추가된다.

단, 2시간을 초과할 경우 10분당 1,000원으로 할증 요금이 적용되므로, 여유롭게 둘러볼 계획이라면 대중교통 이용이 현명하다.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하차하여 고즈넉한 골목길을 따라 10분 정도 걸으면 명륜당에 닿을 수 있다.
책 한 권을 읽는 것보다 더 깊은 울림을 주는 곳. 성균관 명륜당은 단순한 단풍 명소가 아니다. 400년의 세월을 견딘 생명의 경이로움과 600년 조선의 학문 정신이 공존하는 특별한 유산이다. 황금빛 은행잎이 비처럼 쏟아지는 10월 말, 조선 최고의 지성들이 거닐던 그 길 위에서, 압도적인 역사의 무게와 마주해 볼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잠시 학창시절 기억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