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계곡이 만나는 곳이라고?”… 뱃놀이·산책로 다 즐기는 힐링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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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소깍
자연의 물빛 따라 힐링

쇠소깍
쇠소깍 / 사진=ⓒ한국관광공사 박흥순

에메랄드빛 물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전통 뗏목. 병풍처럼 둘러선 기암괴석과 짙은 녹음. 제주 쇠소깍을 떠올릴 때 흔히 그려지는 풍경이다.

하지만 이 평화로운 모습 뒤에, 자연 본연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지역 주민들의 용기 있는 선택과 변화의 이야기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이곳은 더 이상 흔한 관광지가 아니다. 과거의 소란을 뒤로하고 제주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조용히 증명하는 살아있는 현장으로 거듭났다.

쇠소깍

제주 쇠소깍
제주 쇠소깍 / 사진=ⓒ한국관광공사 황성훈

쇠소깍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쇠소깍로 128에 자리한, 한라산에서 발원한 효돈천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이다. 공식 명칭에 담긴 의미부터 예사롭지 않다.

‘쇠’는 소(牛), ‘소(沼)’는 깊은 웅덩이, ‘깍’은 끝을 의미하는 제주 방언이다. 즉, ‘소가 누워 있는 형태의 깊은 못이 있는 끝자락’이라는 뜻이다. 이 독특한 지형은 뜨거운 용암이 바다를 향해 흐르다 굳어진 조면암질 용암류 위로 물이 흐르며 깊게 파고들어 만들어졌다.

그 결과 민물과 바닷물이 신비롭게 뒤섞이는 기수역이 형성되었고, 그 경관적·지질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 지정 문화재 명승 제78호로 보호받고 있다.

쇠소깍 전통조각배
쇠소깍 전통조각배 / 사진=비짓제주

과거 이곳은 가뭄에 기우제를 지내던 신성한 장소였으며, 함부로 물놀이조차 할 수 없던 곳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투명 카약, 수상 자전거 등 다양한 수상 레저 활동이 난립하며 본래의 고즈넉함을 잃어가기도 했다. 소음과 수질오염, 경관 훼손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었다.

그로 인해 오직 줄을 당겨 나아가는 전통 뗏목 ‘테우’와 직접 노를 젓는 ‘전통조각배’ 두 가지만 남기는 변화를 맞이했다. 이는 자연 그대로의 쇠소깍을 미래 세대에게 물려주기 위한 중대한 결단이었고, 이로써 방문객들은 비로소 소음 없이 물소리와 새소리를 들으며 쇠소깍 본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게 되었다.

무동력선 타고 즐기는 진짜 쇠소깍

쇠소깍 테우 진수식
쇠소깍 테우 진수식 / 사진=서귀포시 공식 블로그 오용선

현재 쇠소깍에서 즐길 수 있는 체험은 두 가지다. 먼저 테우는 여러 사람이 함께 타는 줄배로, 뱃사공이 양쪽으로 연결된 줄을 당겨 천천히 계곡을 왕복한다.

힘들이지 않고 편안하게 주변 풍광을 감상하며 쇠소깍의 지질학적 특성과 숨은 이야기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어 남녀노소 모두에게 인기가 높다.

보다 능동적인 체험을 원한다면 2인승 ‘전통조각배’가 제격이다. 직접 노를 저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며 계곡 구석구석을 탐험할 수 있다. 연인이나 친구와 함께 호흡을 맞추며 고요한 물살을 가르는 경험은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한다.

쇠소깍 모습
쇠소깍 모습 / 사진=비짓제주

이 모든 체험은 온라인 사전 예약이 필수다. 잔여석이 있을 경우에만 현장 발권이 가능하지만, 주말이나 성수기에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우므로 반드시 여행 계획 시 미리 예약을 서두르는 것이 좋다.

수상 체험은 하절기(4~9월) 기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동절기(10~3월)는 오후 5시까지 운영되니 방문 시 참고해야 한다.

현명한 여행자를 위한 실용 정보

19회 쇠소깍 축제 모습
19회 쇠소깍 축제 모습 / 사진=서귀포시 공식 블로그 남용현

쇠소깍 계곡 자체의 입장료는 무료이며, 주변 산책로를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주차는 총 3곳의 공영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는데, 체험 매표소와 가장 가까운 제1주차장은 유료로 운영된다. 조금만 걸을 각오를 한다면 제2, 3주차장을 무료로 이용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또한 제21회 쇠소깍 축제가 오는 9월 20일과 21일 양일간 하효항 일원에서 열린다. 락 페스티벌을 비롯한 다양한 공연이 무대에 오를 예정이며, 체험 부스도 운영돼 방문객들에게 풍성한 즐길 거리를 제공할 계획이다.

쇠소깍은 이제 단순한 포토 스팟을 넘어, 자연과 인간의 공존 방식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천하는 장소로 진화했다. 소란스러운 모터 소리 대신 맑은 물소리가, 화려한 인공 구조물 대신 자연 그대로의 기암괴석이 여행자를 맞이하는 곳. 제주가 지켜낸 가장 아름다운 비경 속으로, 느리고 조용한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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