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랑호
호수 위에서 단풍 물든 설악산 바라보다

울긋불긋한 단풍이 병풍처럼 둘러싼 거대한 호수. 그 잔잔한 수면 위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장엄한 산, 설악산의 울산바위가 거대한 데칼코마니처럼 펼쳐진다. 이곳이 바로 강원특별자치도 속초의 보물, 영랑호다.
가을이면 붉은 단풍과 은빛 억새가 7.8km의 둘레길을 채우며 방문객을 유혹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 호수의 진정한 깊이를 알지 못한다.
이곳은 신라의 화랑이 수련을 잊을 만큼 매료되었던 역사의 현장이자, 바다와 격리되어 형성된 신비로운 ‘석호(潟湖)’다. 그리고 지금, 이 고대의 호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특별한 다리가 새로운 전설을 쓰고 있다.
영랑호

영랑호는 강원특별자치도 속초시 영랑호반길 140 일대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이름은 삼국유사의 기록에서 유래한다.
신라 시대, 화랑 ‘영랑’이 동료들과 금강산에서 수련을 마치고 돌아가던 중, 이곳의 수려한 경관과 웅크린 호랑이 형상의 ‘범바위’, 그리고 호수에 비친 설악의 장엄함에 반해 무술대회 출전마저 잊고 오래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단순한 저수지가 아닌, 해안 사구의 발달로 바다와 분리되어 형성된 자연 석호라는 점도 특별하다. 면적은 약 1.21㎢에 달하며 가장 깊은 곳의 수심은 8.5m에 이른다.
이 거대한 자연의 거울은 사계절 내내 설악산의 능선을 빠짐없이 담아내며, 특히 가을철에는 산의 단풍과 호숫가의 억새가 어우러져 압도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호수 중앙을 가로지르는 600m의 기적

이 고요한 호수의 심장부를 걷는 경험은 최근까지 상상에 불과했다. 하지만 2021년 개통한 부교(浮橋), 영랑호수윗길이 모든 것을 바꿨다.
총 길이 600m에 달하는 이 다리는 호수의 남쪽과 북쪽을 연결하며, 말 그대로 ‘호수 위를 걷는’ 비현실적인 체험을 제공한다.
영랑호수윗길은 연중무휴로 운영되지만, 안전을 위해 개방 시간이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로 정해져 있다. 이른 아침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몽환적인 순간부터, 설악산 너머로 해가 지며 호수를 붉게 물들이는 일몰까지, 시간대별로 전혀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특히 다리 중앙 포토존은 호수와 설악산을 배경으로 인생 사진을 남기려는 방문객들로 항상 붐빈다.
자전거 이용자도 많지만, 부교 구간에서는 반드시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가야 한다. 이 작은 규칙 덕분에 보행자들은 더욱 안전하고 여유롭게 호수 중앙의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7.8km 둘레길, 걸음마다 다른 매력

영랑호수윗길이 현대적인 하이라이트라면, 호수 전체를 감싸는 7.8km의 순환 산책로는 영랑호의 본질을 만나는 길이다. 전체 코스는 도보로 약 2시간이 소요되며, 자전거 대여소도 마련되어 있어 취향에 맞게 즐길 수 있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여러 명소를 만나게 된다. 영랑의 전설이 깃든 범바위는 호랑이가 웅크린 듯한 신비로운 기운을 내뿜으며 호수를 굽어보고 있고, 그 옆의 전통 정자 영랑정은 호수를 조망하는 최고의 쉼터가 되어준다.
단풍나무와 은행나무가 터널을 이루는 구간을 지나면, 은빛 물결이 장관인 억새밭과 습지생태공원이 나타난다. 이곳은 각종 철새와 야생동물의 서식지로, 생태 학습의 장으로도 기능한다.
이처럼 7.8km의 둘레길은 역사, 생태, 휴식이 공존하는 완벽한 트레킹 코스다.
완벽한 방문을 위한 실전 정보

속초 가을 여행의 핵심인 영랑호는 방문객에게 더없이 관대한 장소다. 호수와 영랑호수윗길 모두 입장료가 무료이며, 호수 주변에 마련된 주차장 역시 무료로 개방된다.
속초 시외버스터미널에서도 도보로 약 10~15분 거리에 위치해 뚜벅이 여행자에게도 접근성이 뛰어나다. 도시락과 피크닉 매트 반입이 자유롭고, 곳곳에 화장실과 쉼터가 잘 구비되어 있어 반나절 혹은 하루 종일 머물며 여유를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문의: 033-639-2690)
신라 화랑이 발길을 멈췄던 천년 전의 풍경 위로, 이제는 현대의 우리가 그 호수 한가운데를 걷고 있다. 붉은 단풍과 장엄한 설악,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비추는 거대한 거울 영랑호는 단순한 산책 그 이상의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이번 가을, 역사와 현재가 공존하는 속초의 심장부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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