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금둔사, 납월홍매와 천년 역사가 깃든 산사

아직 겨울의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2월, 남도의 산자락에선 먼저 봄이 온다. 다른 지역 매화가 잠들어 있을 때, 이곳에선 이미 홍매와 청매가 꽃망울을 터뜨리며 기와지붕 너머로 붉은 빛을 드리운다. 음력 12월, 납월(臘月)에 핀다 해서 납월홍매라 불리는 이 꽃은 일반 매화보다 1~2개월 이른 개화로 남도 봄소식의 첫 장을 연다.
금전산(해발 약 668m) 서쪽 기슭에 안긴 이 산사는 통일신라 9세기 창건으로 추정되며, 경내에 보물 2점을 고이 간직한 유서 깊은 공간이다. 구산선문 사자산문 계열의 선종 도량 동림사가 전신이며, 9세기 말 징효대사 절중이 주석한 곳으로 기록된다.
한파와 눈 사이에서도 꽃을 피우는 납월홍매의 고집스러운 아름다움은 해마다 사진가와 여행자를 이곳으로 불러 모은다.
금전산 기슭에 깃든 천년 선종 도량의 역사

금둔사(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조정래길 1000)는 금전산 서쪽 중턱, 낙안읍성 민속마을 북쪽 약 2km 지점에 자리한다. 창건 연대와 창건자는 정확히 전해지지 않으나, 출토 유물과 석탑 양식으로 통일신라 9세기 전반 조성으로 추정된다.
본래 이름은 동림사(桐林寺)였으며, 징효대사 절중이 891년 이곳에 주석하고 906년 승탑을 조성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정유재란 때 낙안성과 함께 전소되었고, 17세기 후반 완전히 폐사되었다가 1980년대 들어 중창하며 현재의 면모를 갖추었다.
일주문을 지나 홍교(다리), 대웅전, 태고선원, 종각, 요사채, 전통 차밭이 어우러진 소박하면서도 단정한 산사 풍경이 방문자를 맞이한다. ‘금(金)’은 부처를, ‘둔(芚)’은 싹이 돋는다는 뜻으로, 모든 중생이 불성을 지녔다는 의미를 담았다는 해석이 전해 내려온다.
경내에 살아 숨 쉬는 보물 2점의 조형미

금둔사 경내에는 국가 지정 보물이 두 점 현존한다. 순천 금둔사지 삼층석탑(보물 제945호)은 통일신라 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높이 약 3.92m에 이르는 단아한 석탑이다. 1988년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정제된 비례와 세련된 조각 기법이 돋보이는 신라 석탑의 전형적 양식을 보여준다.
순천 금둔사지 석조불비상(보물 제946호) 역시 같은 해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높이 약 3m·불상 높이 약 2.1m의 대형 석조물이다. 비석 형태에 보개와 대좌를 갖춘 독특한 양식이 눈길을 끌며, 고려시대 제작으로 평가된다.
두 보물 모두 1999~2002년 국립순천대 발굴조사에서 8~9세기 암·수막새가 다량 출토된 절터 위에 자리하고 있어, 이 사찰이 품은 시간의 두께를 실감하게 한다.
납월홍매 6그루가 만드는 이른 봄의 절경

금둔사가 봄마다 주목받는 까닭은 납월홍매 때문이다. 납월홍매는 음력 12월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는 조기 개화 매화로, 일반 매화보다 1~2개월 앞서 붉은 꽃을 피운다. 경내에는 홍매·청매·백매 등 한국 토종 매화 약 100여 그루가 심겨 있으며, 이 중 납월홍매는 6그루로 알려진다.
빠르면 1월부터 꽃망울을 맺기 시작해 통상 2월 하순~3월 초 사이에 절정을 이루지만, 해마다 기온에 따라 시기가 달라지는 편이다.
대웅전 좌측의 홍매와 청매, 범종각 앞 매화, 삼층석탑 뒤편에서 내려다보는 사찰 전경이 사진 포인트로 손꼽히며, 설중매가 피는 해에는 더욱 진귀한 장면이 연출된다. 조기 개화 후 한파가 찾아오면 냉해로 꽃이 상할 수 있어, 방문 전 최근 1~2주 개화 상황과 기상 예보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입장·주차 정보와 주변 연계 여행 코스

금둔사는 입장료 없이 방문할 수 있다. 일주문 앞 소규모 주차장은 무료로 이용 가능하지만 규모가 좁은 편이다. 자가용으로 접근할 경우 낙안읍성에서 선암사 방향으로 약 3km 거리에 금둔사 간판과 일주문 진입로가 나타난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순천역에서 시내버스 68번으로 낙안읍성 3·1운동기념공원까지 이동한 뒤 농어촌버스 20-1로 환승하면 되나, 배차가 하루 2회 수준이므로 사전에 노선을 확인해야 한다.
금둔사 방문 전후에는 낙안읍성 민속마을, 송광사, 선암사를 연계하거나, 광양 청매실농원과 묶는 남도 매화 여행 코스로 확장하면 알찬 봄 일정이 완성된다.

납월홍매가 물드는 금전산 기슭의 산사는 단순한 꽃구경 명소가 아니다. 천년의 시간을 품은 보물과 선종의 숨결, 차밭의 고즈넉한 향기가 한데 어우러진 공간으로, 이른 봄 남도 여행의 출발점으로 손색이 없다.
매화가 가장 먼저 피는 자리에서 봄을 가장 먼저 맞고 싶다면, 순천 낙안면 금전산 기슭으로 발길을 옮겨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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