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풍경이 무료라니 안 믿겨요”… 도심에서 만나는 400년 천연기념물 은행나무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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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명륜당
천연기념물 은행나무의 황금빛 조화

성균관 명륜당 은행나무
성균관 명륜당 은행나무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서울의 심장부 종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도시의 소음에서 딱 한 걸음 비켜선 곳에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이 있다. 높은 빌딩 숲 대신 고즈넉한 기와지붕이, 자동차 경적 대신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 소리가 주인이 되는 곳.

바로 수백 년간 조선 최고의 지성을 길러낸 교육의 전당, 성균관 명륜당이다. 이곳이 그저 오래된 건축물이라고 생각했다면, 올가을 그 편견은 황금빛으로 물든 거대한 은행나무 아래서 산산이 부서질 것이다.

단순한 단풍 명소를 넘어, 살아있는 역사 그 자체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시간 여행을 제안한다.

성균관 명륜당

성균관 명륜당
성균관 명륜당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성균관 명륜당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성균관로 31 (명륜3가)에 자리한, 조선시대 최고의 국립대학이었던 성균관의 중심 강당이다. ‘인륜을 밝히는 집’이라는 이름처럼, 이곳은 왕세자부터 당대 최고의 석학까지 모두가 모여 학문을 논하고 국정의 철학을 세우던 심장부였다.

1398년 태조 7년에 처음 세워진 후, 임진왜란으로 잿더미가 되는 비극을 겪었으나 1601년 선조 대에 다시 지어져 오늘날까지 그 위엄을 잇고 있다.

단순히 보존된 유적을 넘어, 이곳의 진정한 가치는 공간을 채우는 무형의 분위기에 있다. 정갈하게 정돈된 마당을 가로질러 웅장한 목조 건물 앞에 서면, 수백 년 전 치열하게 토론하던 유생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특히 명륜당 앞을 묵묵히 지키고 서 있는 두 그루의 거목은 이곳이 단순한 건축물이 아님을 증명하는 살아있는 증인이다.

은행나무
은행나무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명륜당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제59호로 지정된 이 노거수들이다. 문화재청의 공식 자료에 따르면 수령은 약 400년으로 추정되며, 높이는 무려 21m, 성인 여럿이 팔을 벌려야 겨우 안을 수 있는 7.3m의 가슴높이 둘레를 자랑한다.

임진왜란의 참화 속에서도 살아남아 명륜당의 중건을 지켜봤고, 수많은 학자의 탄생과 조선의 흥망성쇠를 온전히 기억하고 있는 셈이다.

가을이 깊어지면 수만 개의 잎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며 쏟아내는 풍경은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 400년의 세월이 응축된 장엄한 역사의 한 페이지처럼 다가온다.

은행나무 모습
은행나무 모습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성균관 명륜당의 또 다른 매력은 탁월한 ‘가성비’에 있다. 바로 옆에 자리한 창경궁에 들어가려면 성인 기준 1,000원의 입장료가 필요하지만, 명륜당과 은행나무가 있는 이 역사적인 공간은 누구에게나 무료로 열려있다.

정해진 관람 동선을 따라야 하는 궁궐과 달리, 이곳에서는 은행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원하는 만큼 사색에 잠기거나, 명륜당 툇마루에 걸터앉아 고즈넉한 가을 햇살을 즐기는 자유가 허락된다.

방문 가능 시간은 계절에 따라 다르다. 하절기인 3월부터 10월까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동절기인 11월부터 2월까지는 오후 5시까지 개방되니 방문 전 참고하는 것이 좋다. 연중무휴로 운영되어 언제든 마음 편히 찾을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주차는 성균관대학교 내부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으나, 최초 30분에 2,000원, 이후 10분당 500원의 요금이 부과된다. 서울 도심의 주차 여건을 고려하면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내려 약 10분 정도 걷거나, 인근 버스 정류장을 이용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다. 고즈넉한 가을 정취를 느끼며 걷는 길 또한 이 여행의 일부가 될 것이다.

책 한 권보다 깊은 울림을 주는 곳

명륜당 단풍
명륜당 단풍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성균관 명륜당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조선의 철학과 학문 정신이 깃든 교육의 산실이자, 400년 세월을 견딘 생명과 역사가 공존하는 특별한 유산이다.

황금빛 은행잎이 비처럼 쏟아지는 10월 말에서 11월 초, 이곳을 방문한다면 책 한 권을 읽는 것보다 더 깊은 사색과 감동을 얻게 될 것이다.

복잡한 도심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싶을 때, 입장료 걱정 없이 수백 년의 역사가 주는 위로를 받고 싶을 때, 주저 없이 명륜당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조선 최고의 지성들이 거닐던 그 길 위에서, 당신만의 가을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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