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 구문소, 5억 년 지질의 비경
단풍 물든 천연기념물 제417호

11월의 강원도 태백, 불타는 단풍이 5억 년의 시간을 품은 거대한 암석 위로 쏟아져 내리고 있다. 강물이 산을 뚫고 지나가며 만든 거대한 구멍, 그 장엄한 풍경에 감탄하며 산책로를 걷다 보면 아찔한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고요한 계곡을 울리는 자동차 경적 소리다.
이곳은 강원특별자치도 태백시에 위치한 태백 구문소. 2000년 4월 28일 천연기념물 제417호로 지정된 국내 최고의 고생대 지질학적 보고(寶庫)다.
놀라운 사실은 이 5억 년의 시간을 간직한 자연사 박물관의 입장료와 주차비가 모두 ‘무료’라는 것이다. 2025년 가을, 약 1주일간 최적의 절정기를 맞은 이곳을 방문하기 전, 반드시 알아야 할 단 하나의 안전 수칙과 그 속에 숨겨진 지구의 역사를 소개한다.
5억 년 전 바다의 흔적

태백 구문소는 태백시 동태백로 11(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 인근에 위치한다. 이곳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유는 단순한 풍경 때문이 아니다. 국내에서 드물게 약 5억 년 전, 고생대 전기 오르도비스기의 지층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마주하는 거대한 암석 절벽은 단순한 돌이 아니다. 이곳은 ‘막골층’과 ‘직운산층’이라는 두 개의 뚜렷한 지층으로 나뉜다.

지질학자들에 따르면, 아래쪽의 ‘막골층’에서는 건열(땅이 마르며 갈라진 흔적), 물결흔(얕은 물결의 흔적), 스트로마톨라이트(미생물 화석) 등이 발견된다. 이는 5억 년 전 이곳이 얕은 바다 혹은 갯벌 환경이었음을 증명하는 ‘지구의 일기장’이다.
위쪽의 ‘직운산층’에서는 삼엽충, 완족류, 두족류 등 당시 바다를 지배했던 생물들의 화석이 대량으로 출토된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삼엽충의 흔적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이곳은, 전국의 지질학과 학생들이 답사 1순위로 꼽는 현장 학습장이다.
‘천천(穿川)’의 역사

구문소(求門沼)라는 이름은 ‘구멍(문)이 있는 늪’을 뜻하지만, 그 본래의 의미는 훨씬 더 역동적이다.
조선 초기 ‘세종실록지리지’나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는 이곳이 ‘천천(穿川)’이라 기록되어 있다. ‘뚫을 천(穿)’ 자에 ‘내 천(川)’ 자, 즉 ‘강이 산을 뚫고 흐르는 곳’이라는 뜻이다.
이름 그대로 구문소는 태백의 발원지인 황지천과 철암천, 두 물줄기가 만나 억겁의 세월 동안 석회암 암반을 뚫고 지나가며 만들어낸 자연의 걸작이다. 거대한 암석에 아치형으로 뚫린 구멍 사이로 푸른 강물이 유유히 흐르는 모습은 그 자체로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구문소의 매력에 빠져 걷다 보면 가장 주의해야 할 구간이 나타난다. 바로 거대한 암벽을 뚫어 만든 인공 터널이다. 문제는 이 터널이 보행자 전용 산책로가 아니라, 실제 차량이 일방통행으로 지나는 ‘차도’라는 점이다.
많은 방문객이 터널 안의 신비로운 분위기나 터널 끝에서 보이는 풍경을 사진에 담기 위해 잠시 걸음을 멈춘다. 하지만 이곳은 엄연히 차량 통행 구간이므로, 풍경에 몰입한 사이 차가 진입하면 자칫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사진 촬영은 반드시 차량이 지나간 것을 확인한 후 안전하게 진행해야 하며, 터널을 통과할 때는 항상 뒤따르는 차량이 없는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11월 초, 마지막 단풍 절정기

이토록 엄청난 지질학적, 역사적 가치를 지닌 천연기념물 제417호를 감상하는 데 드는 비용은 없다. 입장료와 주차비 모두 ‘무료’다.
주차는 구문소 입구 편의점 방면의 무료 공영주차장이나, 바로 옆에 위치한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 주차장을 이용하면 편리하다. (박물관 입장은 별도 유료)

특히 11월을 기점으로, 구문소 일대는 2025년 가을의 마지막 절정기를 맞고 있다. 단풍은 향후 약 1주일간 가장 화려한 빛을 뽐낼 것으로 관측된다. 5억 년의 세월을 새긴 회색빛 암석과 1년 중 단 며칠만 허락된 붉은 단풍의 극적인 대비는 오직 지금 이 시기에만 볼 수 있는 한정판 풍경이다.
방문 전, 지질 구조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읽어보거나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을 먼저 들러 배경지식을 쌓는다면, 눈앞의 암석이 단순한 돌이 아닌 5억 년 전 고대의 바다로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비가 온 뒤나 겨울철에는 계곡 주변 산책로가 미끄러울 수 있으니, 편안하고 접지력 좋은 신발을 챙기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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