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에도 영하라고?”… 요즘 가족 여행객 몰리는 경상북도 계곡 피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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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가 직접 꼽은 여름 명소

빙계계곡 무지개다리
빙계계곡 무지개다리 / 사진=의성군 공식블로그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7월, 대부분의 계곡이 더위를 식히려는 사람들로 붐비지만, 경상북도 의성군의 한 골짜기는 차원이 다른 서늘함을 품고 있다. 삼복더위에도 얼음이 녹지 않고 바위틈에서 냉기가 새어 나오는 곳, 바로 빙계계곡(氷溪溪谷)이다.

이 신비로운 자연현상 덕분에 예부터 경북의 으뜸가는 풍경 중 하나인 경북팔경으로 꼽혀온 이곳이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환경부 국립공원공단이 2025년 여름방학을 맞아 가족 단위 탐방객이 즐길 만한 국가지질공원 중 하나로 선정한 것이다.

한여름의 냉기를 만나는 자연의 에어컨

빙계계곡
빙계계곡 / 사진=의성군 공식블로그

빙계계곡의 핵심은 단연 ‘빙혈(氷穴)’과 ‘풍혈(風穴)’이다. 계곡의 돌무더기(너덜층) 사이에서 관찰되는 이 현상은 과학적 원리를 품고 있다. 빙혈은 3월 초부터 10월 초까지 얼음을 간직하는데, 이는 국내에서 가장 긴 결빙 기간 기록이다.

한여름에도 평균 영하 0.3도를 유지하는 이곳의 냉기는 너덜층 내부의 독특한 공기 순환 구조 덕분이다.

겨울철 차가워진 외부 공기가 상대적으로 밀도가 높아져 돌무더기 아래로 파고들어 암석 사이의 수분을 얼린다. 여름이 되면 반대로 외부 기온이 높아지면서 너덜층 아래의 차고 무거운 공기가 바위틈으로 밀려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풍혈에서 나오는 ‘자연 에어컨’ 바람이다.

전설과 풍경이 깃든 이야기

의성 빙계계곡
의성 빙계계곡 / 사진=의성군 공식블로그

빙계계곡의 매력은 과학적 현상에만 머물지 않는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맑은 물줄기를 따라 여덟 개의 절경, 즉 ‘빙계팔경(氷溪八景)’이 자리하며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중 하나인 ‘어진바위(仁巖)’는 옛 서원 터 앞에 자리한 높이 2.4미터의 거대한 바위다. 정오가 되면 햇빛이 바위 표면에 ‘어질 인(仁)’ 자 모양의 그늘을 만들어내, 세상 인심을 선하게 이끄는 듯한 숭고함을 자아낸다.

또한, 지금은 메워져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절벽 아래 깊은 웅덩이였던 ‘용추(龍湫)’에는 부처와 싸우던 용의 머리가 부딪혀 파였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이처럼 계곡 곳곳은 단순한 풍경을 넘어, 자연과 시간이 새겨놓은 역사적 서사를 담고 있어 탐방의 깊이를 더한다.

살아있는 지질·생태 교육의 장

빙계계곡 풍경
빙계계곡 풍경 / 사진=의성군 공식블로그

빙계계곡이 국가지질공원의 탐방 명소로 추천된 배경에는 이러한 지질학적, 역사적 가치와 더불어 생태적 희소성이 있다. 계곡 일대의 서늘한 미기후(microclimate) 덕분에 좀미역고사리, 한들고사리 같은 북방계 양치식물이 서식하는 독특한 생태계가 유지되고 있다.

이찬희 의성군지질공원 담당자는 “빙계계곡은 여름철 가족 단위 탐방객이 지질과 생태를 함께 체험할 수 있는 훌륭한 교육형 관광지”라고 그 가치를 설명했다.

방문객들은 시원한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하는 동시에, 지구의 역동적인 활동과 생명의 신비를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빙계계곡 모습
빙계계곡 모습 / 사진=의성군 공식블로그

의성 빙계계곡은 한여름의 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 그 이상이다. 그 안에는 지구의 열역학적 원리가 숨 쉬고, 오랜 세월 쌓인 전설과 역사가 흐르며, 독특한 기후가 키워낸 희귀한 생명이 자라고 있다.

이번 환경부의 여름철 탐방 명소 선정은 빙계계곡이 지닌 복합적인 가치를 다시 한번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단순한 계절 명소를 넘어, 과학적 호기심과 생태적 감수성을 기를 수 있는 살아있는 교과서로서, 빙계계곡은 미래 세대를 위한 소중한 자연유산으로 그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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