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성류굴, 신라 진흥왕도 다녀간 천연기념물

겨울 산행길이 부담스러울 때면 자연이 빚은 지하 공간이 대안이 된다. 바깥 기온이 영하 10도를 밑돌아도 동굴 안은 15도 안팎을 유지하며, 어둠 속에서 켜진 조명이 수억 년 시간을 품은 석회암 지형을 비춘다. 고생대 바다가 융기해 만든 암석층 사이로 빗물이 스며들고, 그렇게 흐른 물이 깎고 녹인 흔적이 종유석과 석순으로 남아 있다.
신라 진흥왕이 560년 6월 이곳을 거쳐 갔다는 기록이 암벽에 새겨져 있으며, 고려 학자와 조선 문인까지 발길을 멈춘 공간이다. 입구를 지나면, 자연이 2억 5000만 년에 걸쳐 완성한 조각품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셈이다.
겨울 여행지로 동굴만 한 곳이 드물다. 계절과 무관하게 일정한 온도가 유지되고, 빙판길 걱정 없이 탐방로를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생대 바다가 만든 2억 5000만 년 석회암 지형

성류굴(경북 울진군 근남면 성류굴로 221)은 고생대 오르도비스기 바다에서 형성된 석회암층이 융기한 뒤 지하수에 의해 용식되어 만들어진 석회동굴이다.
약 4억 8000만~4억 4000만 년 전 바다 밑 퇴적물이 단단한 암석으로 굳어졌고, 이후 2억 5000만~3억 년에 걸쳐 물이 바위를 녹이며 현재의 동굴 구조를 완성했다.
왕피천 수계에 속한 이 동굴은 1963년 1월 21일 천연기념물 제155호로 지정되었으며, 경북 동해안 국가지질공원의 대표 지질명소로 인정받고 있다.
915m 구간에 9개 광장과 3개 지하 호수

동굴 전체 길이는 수중 구간을 포함해 915m에 이른다. 입구 회랑에 기둥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어 기념사진 명소로 인기가 높으며, 내부로 들어서면 9곳의 광장이 차례로 펼쳐진다.
종유석과 석순이 만나 형성된 석주가 천장과 바닥을 연결하고, 수심 4~5m에 이르는 지하 호수 3개가 동굴 곳곳에 자리한다.
특히 용신지로 불리는 지하 호수에는 수중 석순까지 존재해 희귀성이 돋보이는 편이다. 담홍색과 회백색, 흰색으로 다채롭게 물든 석회암 지형은 금강산과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어 ‘지하 금강’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진흥왕 명문과 화랑 이름 각자가 남은 역사 현장

8광장 초연광장 근처 암벽에는 ‘경진육월일 진흥왕거’로 시작하는 25자 명문이 새겨져 있다. 560년 6월 진흥왕이 이곳을 거쳐 갔다는 기록이며, 같은 시기 신라 화랑 임랑과 공랑의 이름 각자도 남아 있어 삼국시대 역사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
고려시대 학자 이곡은 관동유기에 이 동굴을 기록했고, 조선시대 문인 김시습은 굴 안에서 숙박한 일화를 남겼다.
겸재 정선 역시 화폭에 성류굴 풍경을 담았으며, 보천태자가 이곳에서 수도했다는 전설과 임진왜란 당시 주민들이 피신했다는 이야기까지 다양한 문화적 층위를 품고 있다.
월요일 휴무, 성인 5000원에 왕복 40~50분 탐방

하절기(3~10월)에는 09:00~18:00, 동절기(11~2월)에는 09:00~17:00 운영되며, 마감 30분 전까지 입굴이 가능하다. 매주 월요일 휴무이나 월요일이 공휴일이면 익일 휴관한다.
입장료는 성인 5,000원, 청소년 및 군인 3,000원, 어린이 2,500원, 노인 1,000원이며, 65세 이상과 국가유공자, 장애인, 미취학아동은 증빙서류 지참 시 무료다. 왕복 탐방 소요시간은 40~50분 정도이고, 주차장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입구가 좁아 허리를 굽혀야 하므로 헬멧 착용은 필수이며, 천장이 낮고 어두운 구간이 많아 가벼운 겉옷과 작은 가방을 준비하는 편이 좋다. 겨울철 동굴 외부는 결빙 위험이 있어 주의가 필요하며, 인근 불영사 계곡과 연계한 탐방 코스도 가능하다.

성류굴은 고생대 바다의 흔적과 신라 진흥왕의 기록이 공존하는 지하 공간이다. 2억 5000만 년이 만든 석회암 조각과 1,400년 전 새겨진 명문은 시간의 깊이를 체감하게 만드는 셈이다.
겨울철 영하의 추위를 피해 15도 안팎의 동굴 안에서 자연과 역사를 동시에 경험하고 싶다면, 울진으로 향해 지하 세계의 신비를 직접 확인해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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