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걷고 나면 다른 해안길은 못 간다”… 감탄나오는 3.9km 산책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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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료 없이 즐기는 100년 등대와 해안 트레킹

울산 간절곶
울산 간절곶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누군가 한여름의 트레킹을 이야기할 때, 대부분은 녹음이 우거진 계곡이나 서늘한 고산지대를 떠올린다. 뜨거운 태양 아래 놓인 바닷길을 걷는 것은 무모한 도전처럼 여겨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동남쪽 끝자락, 일 년 중 가장 먼저 해가 떠오르는 것으로 유명한 한 장소는 이러한 통념을 보기 좋게 깨뜨린다.

매년 1월 1일이면 수많은 인파로 발 디딜 틈 없는 이곳이, 역설적으로 7월의 태양 아래에서는 가장 한적하고 청량한 휴식처가 된다.

번잡한 피서지를 벗어나 오롯이 자연과 마주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곳의 해안 산책로는 예상치 못한 선물이 되어준다. 뜨거운 햇살은 분명 존재하지만, 바다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길게 늘어선 해송 군락이 만들어내는 그늘은 체감 온도를 몇 도는 낮춰주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간절곶

간절곶 일출
간절곶 일출 / 사진=울산시 공식블로그

그 장소의 정체는 바로 울산 울주군에 자리한 간절곶이다. 포항 호미곶보다 1분, 강릉 정동진보다 5분 먼저 동해의 일출을 맞는다는 상징성 때문에, 이곳의 이름 앞에는 늘 ‘해돋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하지만 간절곶의 진정한 매력은 새해 첫날의 짧은 환희가 아닌, 사계절 내내 이어지는 고즈넉한 풍경에 있다.

그 중심에는 1920년 3월 26일 첫 불을 밝힌 간절곶등대가 서 있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뱃길을 지켜온 하얀 등대는 푸른 동해와 극적인 대비를 이루며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등대를 중심으로 잘 정비된 공원과 산책로는 별도의 입장료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거닐 수 있다. 치밀한 계획 없이 훌쩍 떠나와도, 길을 잃을 염려 없이 탁 트인 바다를 따라 걷는 여유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이유다.

풍경 이상의 것을 담는 길

간절곶 소망우체통
간절곶 소망우체통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간절곶의 산책길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 때문만은 아니다. 이곳에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자극하는 특별한 체험이 기다리고 있다.

공원 한편에 자리한 높이 5m의 거대한 ‘소망우체통’은 그 자체로 시선을 압도하는 조형물이지만, 실제 우편물을 배송하는 기능을 갖춘 어엿한 우체통이다.

인근 특산물 판매장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엽서에 마음을 담아 이 우체통에 넣으면, 며칠 뒤 일상의 공간에서 여행의 추억을 다시 마주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느림의 미학을 체험하게 하는 이 소망우체통은 간절곶 트레킹에 낭만적인 방점을 찍는다. 길을 따라 걸으면 계절에 따라 유채꽃이 만발하는 들판과 파도에 깎인 기암괴석, 그리고 울창한 해송 군락이 차례로 나타나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이처럼 다채로운 풍경의 변화는 국내 트레킹 코스 중에서도 간절곶이 돋보이는 이유다.

간절곶 너머, 이야기는 이어진다

간절곶 해안트레킹
간절곶 해안트레킹 / 사진=울산시 공식블로그

간절곶에서의 시간이 아쉽다면, 지척에 있는 다른 명소들로 여정을 확장할 수 있다. 간절곶이 고즈넉한 사색의 공간이라면, 인근의 진하해수욕장은 활기 넘치는 여름의 에너지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임진왜란의 흔적이 남은 서생포왜성에 오르면 탁 트인 바다와 함께 아픈 역사를 되짚어볼 수 있으며, 온양옹기마을에서는 전통 옹기가 숨 쉬는 고즈넉한 마을을 둘러보는 문화 체험도 가능하다.

간절곶 등대
간절곶 등대 / 사진=울산시 공식블로그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바다와 역사, 자연을 한 번에 경험할 수 있는 울산 간절곶은 그 자체로 훌륭한 여행지이자,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잇는 거점이다.

높게 뻗은 소나무와 푸른 하늘, 그리고 쪽빛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은 감탄을 자아내며, 특히 날씨 좋은 봄가을에는 더할 나위 없는 피크닉 명소가 되어준다. 간절곶 주차는 공식 주차장 및 임시 주차장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이곳을 방문한다면 상징적인 간절곶 등대에도 꼭 올라보자. 등대는 하절기(4~9월)에는 오후 6시까지, 동절기(10~3월)에는 오후 5시까지 문을 열며, 매주 월요일은 휴무다.

울산 간절곶 해안트레킹
울산 간절곶 해안트레킹 / 사진=울산시 공식블로그

결론적으로 울산 간절곶은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이라는 익숙한 명성 뒤에, 한여름의 더위를 식혀줄 청량한 트레킹 코스라는 새로운 가치를 품고 있는 장소다.

100년 넘은 등대가 지키는 바다를 옆에 두고, 시원한 송림 그늘 아래를 걷는 경험은 복잡한 여름 피서지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휴식을 선사한다.

입장료라는 문턱 없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이 길은, 소망우체통이라는 낭만적인 체험까지 더해져 단순한 산책을 넘어 오래도록 기억될 추억을 만들어준다.

뜨거운 태양을 피해 숨어드는 여름이 아닌,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스스로의 속도로 걷는 여름을 원한다면, 간절곶은 가장 현명한 선택지 중 하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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