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슬도
댑싸리·팜파스가 물드는 거문고의 섬

선선한 바람이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9월, 전국은 저마다의 색으로 물들 준비를 서두른다. 바로 이 시기, 울산 동쪽 끝자락의 작은 섬 울산 슬도의 숨겨진 언덕에서는 붉은 산호초와 은빛 깃털의 대향연이 펼쳐진다.
하지만 이 비경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예쁜 옷이나 카메라보다 더 중요한 준비물이 있다. 바로, 대부분의 여행자가 놓치는 ‘비밀의 주소’다.
여행의 성패를 좌우할 첫걸음

울산 슬도의 댑싸리와 팜파스 군락지를 찾아갈 때, 무심코 내비게이션에 ‘슬도’나 ‘방어진항 공영주차장’을 검색했다면 당신은 이미 긴 도보 여행을 예약한 셈이다.
진짜 명당은 그곳이 아니다. 스마트폰을 열어 ‘울산광역시 동구 방어동 30-1’을 입력하자. 아파트 단지 옆, 도로변에 나타나는 비포장 공터가 바로 오늘의 목적지로 향하는 가장 빠르고 현명한 입구다.

이곳에 주차하면, 가파른 언덕을 오를 필요 없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시야를 가득 채우는 붉은 댑싸리의 물결과 마주하게 된다.
지대가 높은 덕분에 슬도와 방어진항의 전경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것은 이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입장료와 주차료 모두 무료이니, 아낀 시간과 체력으로 가을의 정취를 두 배로 만끽하면 된다.
붉은 댑싸리와 은빛 팜파스의 언덕

‘방어동 30-1’ 언덕은 가을을 위해 태어난 듯한 팔레트다. 여름내 푸르렀던 댑싸리(코키아)는 이제 막 붉은빛으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고, 그 옆으로는 어른 키를 훌쩍 넘는 팜파스 그라스가 은빛과 백색의 깃털을 화려하게 피워냈다.
생각보다 넓게 조성된 댑싸리 군락지는 성급하게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사진을 허락한다. 오히려 한 걸음 떨어져 푸른 동해와 고즈넉한 방어진항을 배경으로 담을 때, 그 색의 대비는 더욱 선명해진다.
9월에서 10월 사이가 절정인 팜파스 군락지 사이로는 산책로가 나 있어, 바람에 서걱이는 은빛 물결을 따라 걷는 경험은 비현실적인 감각마저 선사한다. 아직 자라나는 어린 팜파스를 보호하기 위한 ‘출입 금지’ 팻말을 존중하는 것은 이 아름다움을 오래 즐기기 위한 모두의 약속이다.
파도가 연주하는 거문고, 슬도명파

이곳의 진정한 매력은 눈에 보이는 풍경 너머, 섬의 이름에 숨겨져 있다. 슬도(瑟島)의 ‘슬’은 현악기 ‘거문고’를 뜻한다. 섬 전체에 구멍이 숭숭 뚫린 화산암(공암) 사이로 파도가 드나들 때마다 내는 소리가 마치 거문고를 연주하는 듯 구슬프고 신비롭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예로부터 ‘슬도명파’라 불리며 울산 12경 중 하나로 꼽혔을 만큼, 이곳의 파도 소리는 단순한 소음이 아닌 하나의 음악이다.
시각적인 화려함 뒤에 찾아오는 청각적 안식은, 슬도 여행을 그 어떤 가을 나들이보다 깊이 있는 체험으로 완성한다. 붉은 댑싸리와 은빛 팜파스로 눈을 채우고, 영원한 거문고 소리로 마음을 채우는 곳. 올가을, 오감을 만족시킬 완벽한 여행지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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