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메덩골정원
13년의 준비, 가장 한국적인 정원

경기도 양평의 깊은 골짜기, ‘메덩골’. 2025년 가을, 이곳에 세계 최대 규모(약 6만 평)라는 수식어와 함께 하나의 정원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성인 1인 기준 ‘5만 원’이라는, 국내 수목원·정원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의 입장료를 책정했다.
질문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 곳일까? 화려한 꽃과 희귀한 나무가 가득한 곳일까? 답은 ‘아니오’다.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메덩골길 1에 위치한 메덩골정원은 애초에 그런 기대를 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이곳은 자연을 빌려 인문학을 탐험하고, 땅의 서사를 걸으며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는 ‘철학적 순례지’다. 입장료는 관람료가 아닌, 반나절 동안의 지적 탐험을 위한 투자에 가깝다.

이 거대한 정원을 관통하는 두 개의 기둥은 의외의 조합이다.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 그리고 이름 없는 한국의 민초다. 메덩골정원이 자리한 ‘메덩골’은 과거 흉년이 들면 사람들이 들판의 메꽃 뿌리를 캐어 먹으며 연명했던 구황의 땅이었다.
어떠한 절망적 상황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며 극복해 내려는 의지, 즉 니체가 말한 ‘운명애’와 ‘초인’의 정신이 이미 이 땅의 역사에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정원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고통을 긍정하고 스스로를 극복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인간상, 즉 초인의 여정을 걷는 체험이 이 정원의 핵심이다. 꽃의 아름다움보다 척박한 땅에서 피어난 메꽃의 강인함에 더 큰 의미를 두는 이유다.
13년의 기간 동안 이어진 기획

이 담대한 철학적 기획은 1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당대 최고의 전문가들의 손에서 다듬어졌다. 건축계의 거장 승효상(이로재), 한국 조경의 대가 이재연(디자인 린), 그리고 돌에 혼을 불어넣는 명인 이시희(정우조경)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의 목표는 단 하나, “천년 이상 이어질 정원”이자 “일본이나 중국의 영향을 완벽히 배제한, 가장 한국적인 정원”을 만드는 것이었다.

건축가 승효상은 그의 철학인 ‘빈자의 미학’을 통해 의도적으로 비우고 절제된 공간을 설계했다. 화려함을 덜어낸 자리에 방문객의 사유가 채워질 여백을 마련한 것이다.
조경가 이재연은 단절되었던 한국 전통 정원의 맥을 100여 년 만에 현대적으로 부활시키는 역사적 과업을 수행했다. 이는 단순한 복원이 아닌, 한국인의 정신을 담아낸 새로운 형식의 창조였다.
세 가지 이야기, 한국인의 정신을 걷다

정원의 핵심인 한국정원은 세 가지 주제로 전개된다. ‘민초들의 삶’, ‘선비들의 풍류’, ‘한국인의 정신’. 이곳은 식물이 아닌 이야기가 주인공이다.
첫 번째 길, ‘민초들의 삶’에서는 영화 <서편제>의 명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청산도식 돌담길을 만난다. 돌담 너머에는 벼, 고추, 옥수수 등 우리에게 친숙한 텃밭 작물들이 자란다.
화려한 관상용 식물이 아닌, 생명과 직결된 작물들을 보며 척박한 땅을 일구던 민초들의 땀과 애환을 느낄 수 있다. ‘선비들의 풍류’ 구역은 자연을 벗 삼아 학문과 예술을 논하던 선비들의 정신세계를 담았다. 마지막 ‘한국인의 정신’에서는 벼락 맞은 서낭당 고목처럼 시련을 이겨낸 한국사의 질곡과 극복의 서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최상의 경험을 위한 안내서

이 정원을 제대로 경험하기 위해선 몇 가지 준비가 필요하다. 첫째, 모든 것을 ‘비우는’ 것이다. 메덩골정원은 소형 가방외 소지품과 외부 음식물 반입을 엄격히 금지한다. 삼각대, 드론 등 관람에 방해되는 물품도 마찬가지다. 이는 불편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온전히 사색에 집중할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을 만들기 위한 ‘의도된 장치’다.
둘째, 반드시 ‘듣는’ 것이다. 정원 곳곳의 QR코드로 제공되는 디지털 오디오 가이드(개인 이어폰 필수)나, 무료로 진행되는 도슨트 해설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해설 없이는 그저 평범한 돌담과 밭일 뿐이지만, 그 안에 담긴 철학과 역사, 설계자의 의도를 알고 나면 모든 풍경이 살아있는 텍스트가 된다.
당신이 책 한 권을 읽듯 정원을 읽고, 반나절의 고요 속에서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원한다면, 이곳에서의 경험은 그 어떤 것보다 값진 투자가 될 것이다. 메덩골정원은 모두를 위한 곳이 아닐지 모른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공간이다.

















입장료 5만원이 비싸긴 하지만 비싼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일단 한 번 가보고 싶습니다
반나절의 인문학 탐사라. 구태여 그돈 들여서 여기서? 젠체하는 딜레땅뜨들이나 갈까. ‘나 여기 가봤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