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까지 갈 필요 없어요”… 1.2km에 숲·바다·노을 다 담긴 해안 산책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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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종도 예단포 둘레길
서해 노을 품은 영종도의 숨은 산책길

예단포둘레길
예단포 둘레길 / 사진=인천 공식블로그 최용석

인천 영종도 하면 흔히 거대한 국제공항의 관문이나 을왕리의 활기찬 해변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거대한 섬에는 아직 대중의 손길이 닿지 않은, 보석 같은 풍경을 간직한 곳이 숨어 있다.

분주한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 단 30분의 투자로 숲의 평온함과 바다의 장엄함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곳. 놀랍게도 그 이름은 조선의 역사와 글로벌 도시의 미래를 동시에 품고 있다. 바로 SNS를 통해 조용히 입소문을 타고 있는 서해의 새로운 노을 명소, 예단포 둘레길 이야기다.

인천 둘레길
예단포 둘레길 / 사진=인천 공식블로그 최용석

이 특별한 산책로의 공식 명칭은 미단시티 해변공원 산책로로, 인천광역시 중구 운북동 1279 일원에 자리한다. 여행은 소박하지만 정겨운 예단포항에서 시작된다. ‘예단포(禮緞浦)’라는 이름은 조선 시대, 왕실의 혼례에 쓰일 예물과 비단을 실은 배가 드나들던 포구라는 역사에서 유래했다.

이름만으로도 기품이 느껴지는 이곳은,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선사한다. 항구에 마련된 넓고 쾌적한 무료 공영주차장은 방문객을 맞는 첫 번째 배려다.

하늘을 가리는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을 맞으며 걷다 보면, 잠시 바다를 잊을 만큼 싱그러운 숲의 향기에 매료된다. 아이들과 어르신도 무리 없이 걸을 수 있는 이 짧은 숲 터널은, 곧이어 펼쳐질 극적인 반전을 위한 서곡과도 같다.

숲의 끝에서 마주한 바다, 1.2km의 감동

인천 미단시티
예단포 둘레길 / 사진=인천 공식블로그 최용석

10분 남짓 숲길을 걸어 모퉁이를 돌아서는 순간, 시야는 폭발하듯 열린다. 눈앞에 광활한 서해 바다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것이다. 숲의 아늑함에서 바다의 광활함으로 공간이 급격히 전환되는 이 지점은 예단포 둘레길의 백미로 꼽힌다. 많은 방문객들이 “마치 제주 올레길의 한적한 구간을 걷는 듯한 기분”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다.

이곳부터 길은 바다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해안 데크로드로 변모한다. 전망 정자가 있는 반환점까지 왕복 약 1.2km, 성인 걸음으로 30분에서 40분이면 충분히 완주할 수 있는 짧은 코스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풍경의 밀도는 결코 가볍지 않다.

특히 해가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는 오후 늦게 이곳을 찾는다면, 하늘과 바다를 온통 붉게 물들이는 장엄한 일몰을 감상하는 특권을 누릴 수 있다. 이는 북적이는 을왕리 해수욕장의 일몰과는 또 다른, 고요하고 사색적인 감동을 안겨준다.

예단포와 미단시티, 과거와 미래의 공존

예단포둘레길 노을
예단포 둘레길 노을 / 사진=인천 공식블로그 임동환

이 둘레길이 더욱 흥미로운 점은 ‘예단포’와 ‘미단시티’라는 두 이름의 공존에 있다. 조선의 역사를 품은 예단포 지역에 조성된 이 공원은, 영종도를 글로벌 레저 복합도시로 개발하는 ‘미단시티(Midan City)’ 프로젝트의 일부다.

미단시티라는 이름은 ‘아름다울 미(美)’와 예단포의 ‘비단 단(緞)’ 자를 결합한 것으로, 역사적 정체성을 계승하며 미래로 나아가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방문객은 이 짧은 길을 걸으며 한쪽으로는 유구한 역사의 흔적을, 다른 한쪽으로는 국제도시의 미래 비전을 동시에 상상하게 되는 셈이다.

예단포 정자
예단포 정자 / 사진=인천 공식블로그 권미선

차가 없어도 이곳을 찾는 길은 어렵지 않다. 공항철도 영종역에서 하차하여 ‘인천e음 4번’ 버스를 타고 종점인 ‘예단포물양장’에서 내리면 바로 둘레길 입구에 닿는다. 이처럼 뛰어난 접근성은 복잡한 계획 없이도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인생 노을’을 만나러 떠날 수 있게 해준다.

영종도의 익숙한 풍경에 싫증을 느꼈다면, 이번 주말에는 예단포 둘레길로 발걸음을 옮겨보는 것은 어떨까. 역사와 미래가 공존하는 길 위에서 3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서해가 선사하는 가장 깊고 아름다운 위로를 온전히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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