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이 시작되면 여기부터 간다”… 560m 메타세쿼이아가 붉게 타오르는 가을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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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우로지 자연숲
도심 속 메타세쿼이아와 걷는 가을 산책

우로지 자연숲
우로지 자연숲 / 사진=영천 공식블로그 이희철

회색빛 공업단지 옆에 자리한 숲이 이토록 깊은 청량감과 지적인 충만함을 줄 수 있을까. 흔한 주말 산책을 기대하고 발을 들였다면, 이곳의 숨은 이야기에 놀라게 될 것이다.

보라색 맥문동의 여름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 이제는 장대한 역사를 품은 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다. 단순한 녹지를 넘어, 도시의 숨통을 틔우고 시간을 거스르는 비밀을 품고 있는 곳, 바로 영천 우로지 자연숲이다.

“나무 47그루가 자동차 1대의 먼지를 삼킨다고?”

우로지 자연생태공원
우로지 자연생태공원 / 사진=영천 공식블로그 이수이

우로지 자연숲은 경상북도 영천시 언하공단로 91-12, 언하공단과 주거 지역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위치는 우연이 아니다. 도시숲은 본래 공단에서 발생하는 각종 오염물질과 미세먼지로부터 주거지를 보호하는 ‘완충녹지’의 역할을 부여받고 태어났다.

숲 입구의 안내판에 적힌 ‘나무 47그루는 경유차 1대가 연간 배출하는 1,680g의 미세먼지를 흡수한다’는 문구는 이곳의 존재 이유를 명확히 보여주는 과학적 증거다. 삭막할 수 있는 공단 옆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오히려 도시의 ‘허파’가 되겠다는 사명으로 극복한 셈이다.

우로지 자연숲 단풍 메타세콰이어
우로지 자연숲 단풍 메타세콰이어 / 사진=영천 공식블로그 이희철

이곳의 백미는 단연 약 560m에 걸쳐 조성된 메타세쿼이아 길이다. 단순히 키 큰 나무가 늘어선 길이 아니다. 메타세쿼이아는 본래 공룡이 살았던 중생대 백악기부터 지구에 존재해 온, 이름 그대로 ‘살아있는 화석’이다.

20세기 초까지 화석으로만 발견되어 멸종된 식물로 알려졌으나, 1946년 중국의 한 오지에서 자생 군락지가 극적으로 발견되면서 세상에 다시 그 존재를 알렸다.

이곳의 곧게 뻗은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수천만 년의 세월을 이겨낸 강인한 생명의 역사 그 자체다. 5월에는 노란 꽃을 피우고 9월에 열매를 맺으며, 가을이 깊어지면 타는 듯한 적갈색 단풍으로 방문객을 맞이한다.

사계절의 매력과 놓치면 아쉬운 즐길 거리

우로지 자연숲 나무
우로지 자연숲 나무 / 사진=영천 공식블로그 이지원

우로지 자연숲의 시간은 계절마다 다른 색으로 흐른다. 늦여름까지는 보라색 융단을 깔아놓은 듯한 맥문동 군락지가 몽환적인 풍경을 선사하며 사진 명소로 이름을 알렸다. 보라색 꽃이 잦아든 지금은 짙은 녹음이 그늘을 만들어 사계절 내내 시원한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이곳을 방문했다면 놓치지 말아야 할 두 가지가 더 있다. 첫째는 웅장한 음악과 함께 물줄기를 뿜어내는 음악분수다. 시원한 물보라가 더위를 식혀주는 이 음악분수는 아쉽게도 매년 10월 31일을 끝으로 다음 해 봄까지 긴 휴식에 들어간다. 가을의 정취 속에서 마지막 분수 쇼를 감상하고 싶다면 방문을 서두르는 것이 좋다.

둘째는 숲 바로 건너편에 위치한 망정 무궁화동산의 황톳길이다. 망정2 공영주차장(무료)에 차를 세우면 두 곳을 모두 쉽게 즐길 수 있다.

우로지 자연숲 메타세콰이어
우로지 자연숲 메타세콰이어 / 사진=영천 공식블로그 김유성

우로지 자연숲에서 피톤치드를 마시며 산책한 뒤, 신발을 벗고 부드러운 황토를 밟으며 맨발로 걷는 경험은 도심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자연 치유 코스다. 아쉽게도 숲 내부에는 반려동물 출입이 금지되니 방문 시 참고해야 한다.

담양이나 남이섬의 유명 메타세쿼이아길이 자연 속 웅장함을 자랑한다면, 영천 우로지 자연숲은 도심 속에서 시민의 건강을 지키는 기능적 역할과 역사적 스토리가 결합된 특별한 공간이다.

굳이 멀리 떠나지 않아도, 우리 곁에서 건강과 지적 즐거움을 동시에 선사하는 보물 같은 곳이다. 다가오는 주말, 단순한 산책을 넘어 지구의 역사를 품은 나무 그늘 아래서 진정한 쉼을 경험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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