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등대·항구 다 품은 힐링길

자동차의 속도로는 결코 발견할 수 없는 풍경이 있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해안도로 위에서는 그저 푸른 선으로만 보이던 동해 바다가, 두 발로 직접 땅을 딛고 걸을 때 비로소 다채로운 표정과 깊은 이야기를 드러낸다.
경상북도 영덕군, 그 해안선을 따라 64.6km에 걸쳐 이어진 ‘영덕 블루로드’는 바로 그 느림의 미학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길이다. 이곳은 단순한 산책로가 아니라, 파도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영덕의 자연과 역사를 한 걸음씩 탐사하는 여정의 무대다.

영덕 블루로드는 거대한 트레일 시스템인 해파랑길의 일부로, 총 네 개의 개성 넘치는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각 코스는 저마다 다른 풍광과 난이도를 지녀 도보 여행자에게 선택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A코스 ‘빛과 바람의 길'(17.5km)은 강구항에서 출발해 풍력발전단지를 거쳐 해맞이공원까지 이어지는 구간으로, 대부분 산길로 이루어져 있어 다소 체력을 요구하지만 정상에서 맞는 바람은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B코스 ‘푸른대게의 길'(15.5km)은 해맞이공원에서 축산항까지 바다와 가장 가깝게 걷는 길로, 수려한 해안 절경 덕분에 블루로드의 백미로 꼽힌다.

C코스 ‘목은사색의 길'(17.5km)은 목은 이색 기념관과 괴시리 전통마을 등을 지나며 산과 바다, 그리고 역사의 정취를 함께 느낄 수 있다.
마지막으로 D코스 ‘쪽빛파도의 길'(14.1km)은 7번 국도와 나란히 걸으며 장사해수욕장 등을 지나 강구터미널로 회귀하는 코스다. 길 곳곳에 설치된 안내판 덕분에 초행자도 길을 잃을 염려 없이 온전히 걷기에만 집중할 수 있다.

블루로드 B코스를 걷다 보면 자연이 오랜 시간 공들여 빚어낸 예술 작품들을 마주하게 된다. 축산항 인근의 죽도산 전망대는 과거 어부들의 안전을 지키던 등대가 있던 자리에 세워져, 이제는 동해의 푸른 바다를 한눈에 조망하는 최고의 전망대 역할을 한다.
전망대 아래로 이어지는 데크길은 기암괴석과 맑은 바다가 어우러져 트레킹의 시작점으로서 완벽한 풍경을 선사한다.
블루로드의 여정은 단순히 걷는 행위에서 끝나지 않는다. 길의 주요 기점인 강구항은 전국 최대의 영덕 대게 집산지로서, 활기찬 어촌의 삶을 가장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영덕 블루로드는 단순한 걷기 길이 아니다. 그것은 빠른 속도에 익숙해진 현대인에게 의도적인 불편함과 느림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발견하게 하는 ‘사색의 길’이다.
자동차 창밖으로 스치던 풍경이 아닌, 발끝으로 전해지는 흙의 감촉과 귓가를 맴도는 파도 소리, 코끝을 스치는 갯내음을 통해 비로소 영덕의 진짜 얼굴과 마주하게 된다. 쪽빛 바다와 나란히 걸으며 스스로의 속도를 찾아가는 이 길은, 잊고 있던 삶의 중요한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깊은 울림을 남긴다.

















길을 걷고 싶은데 대중교통을 알려 주시면 감사, 동파랑길 같은데 시작점을 부탁 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