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 세계유산 산사 중에 여기가 제일 밀도 있다”… 국보 5건·보물 9건 품은 고찰

소백산 자락에 안긴 천년고찰 영주 부석사에서 바람을 맞으며 역사와 설화가 깃든 목조 건축의 정취를 느껴봅니다.

영주 부석사
영주 부석사 / 사진=한국관광콘텐츠랩

핵심 요약

  • 영주 부석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이자 국보 5건과 보물 9건을 보유한 1,300년 역사의 화엄사상 발원지입니다.
  • 관람료는 무료이며 승용차 기준 3,000원의 주차 요금으로 연중무휴 상시 관람할 수 있습니다.
  • 고려 목조건축의 정수인 무량수전 배흘림기둥과 성보박물관에 보관된 조사당 벽화를 필수로 관람해야 합니다.

초여름 봉황산 능선을 타고 내려오는 바람은 땀보다 먼저 도착한다. 안양루 계단을 오르면 가파른 숨을 고를 틈도 없이 마당이 열리고, 그 너머로 목조 건물 하나가 고요하게 버티고 서 있다. 천 년을 그 자리에서 같은 방향으로 산과 하늘을 바라봐온 건물이다.

676년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아 창건한 부석사는 우리나라 화엄사상의 발원지로 불린다. 2018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의 구성 유산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이름을 올린 7개 사찰 중 하나이며, 한 경내에 국보 5건·보물 9건·도유형문화유산 2건을 품고 있는 살아 있는 역사 교과서다.

소백산 국립공원 산자락에 안긴 이 사찰은 문화재의 밀도만큼이나 설화와 풍경이 짙게 쌓인 곳이기도 하다.

봉황산 중턱에 자리한 1,300년 고찰의 내력

영주 부석사 풍경
영주 부석사 풍경 / 사진=ⓒ한국관광공사 이범수

부석사(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는 신라 문무왕 16년인 676년에 의상대사가 봉황산 중턱에 세운 화엄종 사찰이다. ‘부석’이라는 이름은 불전 서쪽 큰 바위가 아래 바위와 맞닿지 않고 떠 있는 듯한 형상에서 비롯됐다.

의상대사가 절을 지을 때 선묘의 원혼이 바위로 변해 도적들을 물리쳤다는 설화와 연결되며, 그 뜬돌이 곧 사찰 이름의 기원이 됐다. 고려 시대에는 선달사 또는 흥교사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1916년 해체보수 과정에서 발견된 묵서명에는 공민왕 7년인 1358년 병화를 당한 뒤 우왕 2년인 1376년에 무량수전이, 우왕 3년인 1377년에 조사당이 재건됐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고려 목조건축의 정수, 무량수전

부석사 무량수전
부석사 무량수전 / 사진=영주시 문화관광

무량수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 하나로 평가된다. 정면 5칸·측면 3칸 규모에 주심포 양식과 팔작지붕을 갖춘 이 건물은 배흘림이 두드러지는 원형 기둥으로 유명하며, 가구 방식을 근거로 고려 중기 건물로 추정된다.

내부 서편 불단에는 아미타여래좌상을 동향으로 안치했는데, 봉안된 소조여래좌상은 국내에 전래하는 가장 이른 시기의 소조 불상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아 무량수전과 함께 국보로 지정돼 있다.

무량수전 앞 석등 역시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 후반 제작으로 추정되는 국보이며, 무량수전을 향해 서 있는 자세로 경내의 긴 시간을 함께 증언한다.

설화와 유물이 겹쳐지는 공간들

부석사 조사당
부석사 조사당 / 사진=영주시 문화관광

무량수전 서쪽에는 의상대사의 호법룡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우물이 남아 있어, 천 년 전 설화가 현실의 공간과 겹치는 독특한 경험을 선사한다.

조사당은 무량수전과 함께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목조 건물로, 내부 벽면에 그려졌던 조사당 벽화는 목조건물 벽화 가운데 가장 이른 사례로 꼽히며 현재 성보박물관 유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경내에는 이 밖에도 통일신라 시대 삼층석탑·당간지주·석조여래좌상, 고려 시대 원융국사비·고려 각판 등이 함께 남아 있어 두 시대를 가로지르는 유물의 흐름을 한 마당에서 느낄 수 있다.

방문 전 확인할 이용 안내

영주 부석사 모습
영주 부석사 모습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부석사는 연중무휴 상시 개방을 표방하며 사계절 방문이 가능하다. 관람료는 무료이며, 주차 요금은 승용차 3,000원·버스 6,000원으로, 사찰 인근에 주차장과 화장실 등 기본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다. 부석사는 경상북도 영주시 외곽 산지에 위치해 자가용 이동이 편리하며, 문의는 054-633-3464로 할 수 있다.

신라에서 고려까지, 창건 이후 1,300여 년 동안 부석사는 건물을 고쳐 짓고 벽화를 그리며 새 시대의 기록을 층층이 쌓았다. 국보와 보물이 일상적으로 마당을 채우는 곳은 드물다. 숫자로 환산되는 문화재 밀도 그 이상으로, 유물 하나하나에 이야기가 붙어 있다는 점이 부석사를 단순한 관람지와 구분 짓는다.

초여름 녹음이 짙어지는 지금, 소백산 산바람과 천 년 목조건물의 정적이 겹치는 시간을 경험하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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