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km 길을 호수 따라 달린다”… 운전 내내 감탄 나오는 절경 드라이브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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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호
전북의 생명수를 품은 드라이브 명소

용담호 드라이브
용담호 드라이브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진안의 깊은 산세 속으로 굽이치는 도로를 따라 차를 몰다 보면, 한동안은 짙은 녹음과 간간이 나타나는 작은 마을의 풍경이 전부인 듯 느껴진다. 그러다 어느 커브를 돌아서는 순간, 예고 없이 시야가 폭발적으로 열린다. 닫혀 있던 산과 산 사이로 하늘과 맞닿은 거대한 물의 평원이 눈앞에 펼쳐지는, 바로 그 압도적인 순간이다.

쪽빛 하늘을 그대로 복사해 붙인 듯한 수면 위로, 겹겹의 산 그림자가 묵직하게 드리운 풍경은 비현실적일 만큼 고요하고 장엄한다. 마치 태초부터 이곳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모습이지만, 이 거대한 물그릇은 사실 격동의 시대를 관통하며 인간의 손으로 빚어낸 결과물이다.

평온해 보이는 저 물결 아래에는, 단순히 아름답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깊이와 무게를 지닌 이야기가 잠들어 있다. 이곳은 단순한 호수를 넘어, 한 시대의 필요가 낳은 치열한 공학적 성취이자,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었던 애틋한 역사의 기록이며, 오늘날 전북의 심장을 뛰게 하는 생명의 원천이다.

용담호

용담호
용담호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용담호는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용담면 월계리 일대에 자리한 거대한 인공 호수다. 그 탄생은 20세기 후반, 만성적인 용수 부족에 시달리던 전주권과 새만금 간척지에 안정적으로 물을 공급해야 한다는 절박한 과제에서 시작됐다.

금강 상류의 풍부한 수자원을 서쪽의 만경강 유역으로 돌리는 ‘유역 변경’ 방식이 채택되었고, 그 거대한 계획의 중심에 높이 70m, 길이 498m의 용담댐이 세워졌다. 이 댐의 완공으로 총 저수량 8억 1,500만 톤, 하루 135만 톤의 물을 공급하는 전북의 ‘생명수 그릇’이 탄생했다.

하지만 이 생명의 물길을 내기 위해,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땅이 물속으로 사라져야 했다. 진안군의 중심지였던 용담읍 전체와 정천면, 주천면, 상전면, 안천면, 동향면 등 5개 면의 마을들이 지도 위에서 사라졌다.

용담호 가을 풍경
용담호 가을 풍경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고향을 등져야 했던 3천여 세대, 1만 2천여 명의 수몰민, 즉 실향민들의 애환과 기억은 이제 호수 주변 곳곳에 조성된 ‘망향의 동산’에 고스란히 서려 있다. 특히 용담대교 북단에 자리한 망향의 동산은 호수의 동서 양쪽을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전망을 자랑하며, 실향민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하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남아있다.

이곳에는 단순한 그리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망향의 동산 한편에는 수몰 지역에서 옮겨온 역사의 증인, 태고정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1752년(영조 28년)에 건립된 이 정자는 전형적인 조선 시대 누정 건축의 미를 보여주는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16호다. 아름다운 곡선의 팔작지붕과 견고한 짜임새는 선조들의 높은 건축 수준을 짐작게 한다.

용담댐 건설로 인해 1998년 현재 위치로 이전되어, 이제는 고요한 호수의 풍광과 어우러지며 수몰의 역사를 증언하는 귀중한 문화유산이 되었다.

하늘과 물, 그리고 기억을 잇는 길

용담호 드라이브 코스
용담호 드라이브 코스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러한 배경을 알고 나면 용담호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히는 일주도로 드라이브는 더욱 특별한 경험으로 다가온다. 댐을 중심으로 약 64km에 달하는 이 길은 어느 구간을 달려도 감탄을 자아낸다.

정천면에서 용담면을 거쳐 댐 본체로 향하는 북측 코스는 호수의 넓은 본류를 끼고 달려 광활하고 탁 트인 파노라마 뷰를 선사한다. 반면, 상전면과 안천면을 지나는 서측 코스는 크고 작은 만(灣)과 곶(串)을 따라 굽이치며, 아기자기하고 정겨운 풍경을 보여주는 매력이 있다.

이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는 호수를 가로지르는 여러 교량 덕분에 완성될 수 있었다. 특히 용담대교와 같은 다리들은 단절된 육지를 이어주는 기능을 넘어, 다리 위에서 잠시 차를 멈추고 호수의 장엄함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 역할을 한다.

호안에는 인위적인 상업 시설이 거의 들어서지 않아, 다른 유명 호수 관광지와 달리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 역시 용담호가 가진 독보적인 가치다.

여행의 깊이를 더하는 공간들

용담호 풍경
용담호 풍경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여행의 깊이를 더하고 싶다면 용담댐 정상부에 위치한 ‘용담댐 물문화관’ 방문을 추천한다. 단순히 물 홍보관을 넘어, 이곳 1층에는 수몰 전 용담읍의 모습을 정교하게 재현한 거대한 디오라마가 있어 가슴 뭉클한 감동을 준다.

더불어 물의 소중함과 순환 과정, 댐의 역할과 건설 역사를 담은 다양한 전시물을 통해 용담호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월요일 휴무)하며 입장료와 주차료는 모두 무료다.

용담호의 광활함을 즐겼다면, 지척의 다른 명소와 연계해 진안의 다채로운 매력을 느껴보는 것도 좋다. 하늘을 찌를 듯 솟은 기이한 암봉의 마이산은 호수와는 전혀 다른 수직적 장엄함을, 맑은 물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운일암·반일암 계곡은 청량한 휴식을 선사한다.

용담호 모습
용담호 모습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용담호는 그저 가볍게 즐기는 드라이브 코스, 그 이상의 의미를 품은 곳이다. 이곳은 대한민국의 압축적인 발전사와 그 이면의 희생, 그리고 자연과 기술의 공존을 담아낸 거대한 살아있는 박물관과도 같다.

용담호 일주도로를 따라 즐기는 드라이브는 단순히 운전대를 잡고 길 위를 지나는 행위를 넘어, 여러 시간의 층위를 동시에 꿰뚫는 특별한 경험이다. 눈앞에는 하늘과 맞닿은 광활한 수평선이 펼쳐지지만, 발밑에는 용담읍을 비롯한 수몰 지역의 역사가 고요히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늦여름의 짙은 녹음이 초가을의 청명한 하늘과 어우러지는 지금이야말로, 이러한 사색을 겸한 드라이브를 떠나기에 최적의 시기다. 이번 주말, 단순한 풍경 감상을 넘어 한 편의 깊이 있는 서사를 온몸으로 체험하는 드라이브를 위해 용담호로 향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곳에서 물과 삶, 그리고 기억이 빚어낸 장엄한 이야기를 직접 만나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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