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천년의 시간을 버틴 황금빛 거목

바야흐로 가을의 절정이다. 이 계절이면 누구나 마음속에 품은 단풍 명소 한두 곳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유명세만큼이나 치열한 예약 경쟁, 혹은 만만치 않은 입장료가 때로는 발길을 망설이게 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생명체가 뿜어내는 황금빛 에너지를 ‘무료’로, 그것도 수도권에서 한두 시간이면 만날 수 있다. 1,100년의 세월을 견뎌낸 경기도 양평 용문산의 거대한 은행나무 이야기는 단순한 단풍놀이, 그 이상의 감동을 예고한다.
“살아있는 화석, 천년의 시간을 지켜온 천왕목”

양평 용문사는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용문산로 782에 자리한 천년 고찰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사찰 자체보다 먼저 경내에 있는 단 하나의 존재를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바로 1962년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된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이다.
이 나무의 존재감은 수치만으로도 압도적이다. 추정 수령 약 1,100년, 나무의 높이는 약 41~42m에 달하며, 가슴 높이의 줄기 둘레만 해도 약 11m에 이른다. 뿌리목 둘레는 15m가 넘는 것으로 측정되기도 했다. 아파트 15층 높이에 버금가는 거대한 생명체가 눈앞에 서 있는 것이다.

단순히 크고 오래되기만 한 것이 아니다. 이 나무에는 신라의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가 나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향하던 중 심었다는 전설, 혹은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은 것이 자라났다는 신비로운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국가유산포털은 이 나무에 대해 “오랜 세월 속에서도 불타지 않고 살아남아 용문사 입구를 지키고 있다 하여 ‘천왕목(天王木)’이라고 불린다”고 기록한다. 수많은 전란과 화마 속에서도 용문사를 지켜낸 수호신처럼, 가을이면 온 세상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며 그 생명력을 과시한다.
천년 고찰의 품격과 20분의 산책길

이 거대한 은행나무를 품고 있는 용문사 역시 신라 신덕왕 2년(913년)에 대경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선 자리에서 한눈에 다 볼 수 있을 만큼 규모는 크지 않을 수 있지만, 용문산의 웅장한 산세를 배경으로 한 고즈넉한 사찰의 기품은 은행나무의 위엄과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이 특별한 경험을 위한 여정은 용문산 관광단지 주차장에서 시작된다. 이곳에서 용문사 일주문까지는 약 20분 정도의 도보 이동이 필요하다.
하지만 길목에 펼쳐지는 은행나무길이 먼저 방문객을 맞이하며, 맑은 계곡 물소리와 함께 걷는 20분은 사찰에 닿기 전 마음을 정화하는 기분 좋은 준비 과정이 된다.
입장료 ‘0원’, 주차비 3,000원으로 누리는 호사

가장 반가운 소식은 비용이다. 2023년 5월 4일부로 시행된 정부의 국가지정문화재 관람료 감면 정책에 따라, 용문사 입장료(문화재 관람료)는 전면 무료화되었다.
이제 방문객이 부담할 비용은 용문산 관광단지의 주차료가 유일하다. 주차료는 승용차(중·소형) 기준 3,000원, 경차 1,000원, 대형 5,000원이다. 단돈 3,000원으로 천연기념물 제30호의 압도적인 가을빛과 천년 고찰의 정취를 함께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는 1,100년이라는 시간 자체가 빚어낸 ‘자연의 경이’이며, 이제는 누구나 문턱 없이 즐길 수 있는 ‘열린 유산’이라는 점에서 독보적인 가치를 지닌다.
이번 주말, 천년의 시간을 견뎌낸 생명체가 선사하는 장엄한 황금빛 그늘 아래서, 역사와 자연이 주는 깊은 위로를 경험해 보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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