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적 단풍 명소가 열렸다”… 120년 만에 전면개방된 가을 산책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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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공원
붉은 단풍과 벽돌이 만든 영화 같은 풍경

용산공원
용산공원 / 사진=서울관광아카이브

서울의 심장부, 아파트 숲과 초고층 빌딩 사이에서 완벽한 ‘시간의 섬’을 만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마법 같은 상상이 아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복잡한 추첨과 사전 예약을 거쳐야만 엿볼 수 있었던 금단의 땅. 120년의 세월 동안 굳게 닫혀 있던 그 문이 마침내 ‘예약 없이’ 활짝 열렸다.

가을의 절정을 향해 가는 지금, 이곳은 단순한 공원을 넘어 1950년대 미국의 어느 마을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비현실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역사의 흔적과 건축, 그리고 붉은 단풍이 완벽하게 조화된 용산공원 부분개방부지의 모든 것을 심층 취재했다.

“1950년대 미국 교외 주택, 붉은 벽돌에 멈춘 시간”

용산공원 단풍
용산공원 단풍 / 사진=서울관광아카이브

이 특별한 공간의 공식 명칭은 용산공원 부분개방부지이며, 주소는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221이다. 이곳은 과거 미군 장교들의 주거 공간이었던 ‘장교숙소 5단지’로 불리던 곳이다. 방문객들이 ‘서울 속 작은 미국’이라 부르는 이유는 이곳을 채우고 있는 독특한 건축물들 때문이다.

공원에 들어서면 고층 아파트 대신 나지막한 2층 높이의 붉은 벽돌 주택들이 시선을 압도한다. 완만한 경사의 지붕, 집집마다 딸린 넓은 잔디 마당과 차고까지. 이 모습은 1950년대, 제2차 세계대전 승전 이후 경제 호황기를 맞은 미국에서 대대적으로 유행했던 전형적인 중산층 교외 주택 양식이다.

수직적 고밀도 개발에 익숙한 서울의 도시 풍경과는 완벽히 대조되는 이 수평적이고 여유로운 공간감은 방문객에게 낯설지만 강력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마치 잘 만든 영화 세트장 한복판을 걷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왜 이곳이 개방과 동시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는지 즉각 이해하게 된다.

붉은 벽돌과 붉은 단풍의 ‘시각적 시너지’

용산공원 장교숙소 단풍
용산공원 장교숙소 단풍 / 사진=서울관광아카이브

용산공원 부분개방부지의 가을은 특별하다. 이곳의 진정한 매력은 건축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 순간에 폭발한다. 건물의 주조색인 톤 다운된 ‘붉은 벽돌’과, 가을의 절정에서 선명하게 타오르는 나무들의 ‘붉은 단풍’이 만나 환상적인 색의 조화를 빚어낸다.

입구에서부터 이어지는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붉은 벽돌담 너머로 노랗고 붉게 물든 정원수들이 고개를 내민다. 특히 햇살이 좋은 날 오후, 빛을 받은 단풍잎과 그 그림자가 붉은 벽돌 위에 어른거리는 모습은 그 어떤 공원에서도 볼 수 없는 이국적인 정취를 극대화한다.

이곳은 다른 서울의 공원, 예를 들어 의도적으로 조경된 서울숲이나 올림픽공원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곳은 ‘조성된 공원’이 아니라 ‘보존된 주거지’다. 덕분에 방문객들은 잘 꾸며진 관람 코스가 아닌, 1950년대 미국 중산층이 누렸을 법한 실제 주거 환경의 가을을 고스란히 체험하게 된다.

120년의 기다림, 금단의 땅이 열리다

용산공원 장교숙소
용산공원 장교숙소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 평화로운 풍경 뒤에는 약 120년에 달하는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이 겹겹이 쌓여있다. 이 땅은 1904년 일제가 군사기지로 활용하기 시작한 이래, 단 한 번도 일반인의 자유로운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해방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주한미군이 주둔하며 이곳은 미군의 핵심 기지이자 장교들의 주거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수십 년간 철조망 너머의 ‘이방인의 땅’이었던 이곳은 긴 협상 끝에 마침내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2025년 10월 현재, 가장 큰 변화는 ‘전면 개방’이다. 개방 초기 극심한 경쟁률을 뚫어야 했던 사전 예약 제도가 완전히 폐지되면서, 이제는 누구나 원할 때 자유롭게 이 역사적인 공간을 산책할 수 있게 되었다.

“방문 성패는 ‘주차 포기’에 달렸다”… 완벽한 방문 전략

용산공원 장교숙소 전경
용산공원 장교숙소 전경 / 사진=용산공원 블로그

용산공원 부분개방부지는 공식적으로 일반 방문 차량의 주차를 원천적으로 불허한다. 부지 내 주차는 장애인, 다자녀 가정 등 사전에 시스템을 통해 등록된 특정 조건의 차량만 극소수로 허용될 뿐이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차를 몰고 오는 순간, 방문은 시작부터 꼬이게 된다.

물론 인근에 유료 주차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도보 10분 거리의 ‘용산가족공원 주차장’이나 15~20분 거리의 ‘국립중앙박물관 주차장’을 이용할 수는 있다. 하지만 가을 단풍철 주말, 이들 주차장의 대기 줄은 상상을 초월하며, 주차에만 30분에서 1시간 이상을 허비하기 십상이다.

가장 완벽하고 현명한 해답은 대중교통이다. 경의중앙선 서빙고역 1번 출구로 나오면, 길 하나만 건너면 바로 공원 입구다.

운영 시간도 확인해야 한다. 외부 공간은 매주 화요일부터 일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방된다. 다만 전시 및 체험 공간으로 활용되는 주택 내부 시설은 오후 5시에 관람이 마감되며, 공원 전체의 마지막 입장 역시 오후 5시에 마감된다.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설과 추석 당일은 공식 휴관일이다.

예약 없이 떠나는 가장 가까운 시간 여행

용산공원 미군기지 단풍
용산공원 미군기지 단풍 / 사진=서울관광아카이브

용산공원 부분개방부지는 단순한 휴식처나 사진 명소를 넘어선다. 이곳은 서울 한복판에서 과거(1950년대)와 현재가 공존하고, 한국의 역사와 미국의 문화가 교차하는 독특한 시공간적 경험을 선사하는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120년의 기다림 끝에, 이제는 예약 걱정 없이 누구나 누릴 수 있게 된 특별한 가을. 복잡한 도심을 잠시 잊고 붉은 벽돌과 붉은 단풍이 어우러진 고요한 산책을 즐기고 싶다면, 이번 주말 서빙고역 1번 출구로 향해야 할 이유는 이미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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